PHASE 6 15장

재가 된 뒤에 (1)






 교도소의 밤은 길었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형광등은

밤과 낮의 구분을

허락하지 않았다.



희끄무레한 빛이

천장을 타고 내려와

콘크리트 바닥 위에

평평하게 눌려 있었다.


    아스파시아는

 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누군가의 발이 몇 시간 전

 그 위를 지나갔기 때문이다.

 머리는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손으로 만지자 젖어 있었다.

 피였다.


 그녀는 잠깐 웃었다.

 웃음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예전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설계하던 사람이었다.



 분노를 두려움을 사랑을

 어디로 흐르게 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설계되지 않았다.


 감정은 즉시

 손이 되었고 발이 되었고

 무게가 되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를

 바닥에 눌러 박았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아스파시아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댓글.

스크린샷.

영상.

 페리클레스의 얼굴.

 그리고 군중.



 그녀는 갑자기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구조였다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는 희망을 팔았고

 누군가는 증오를 팔았다.

 사람들은 그 둘을 같이 소비했다.



 희망이 끝나면

분노가 시작되고

 분노가 지치면

다시 희망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항상 누군가가 타야 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이해했다.

 아스파시아는 눈을 감았다.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희열의 순간을 떠올리며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그들의 적이 아니다. 





 잠깐 숨을 들이쉬었다.

입안에서 피 냄새가 났다. 




적조차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나는 그들의 연료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군중은

진실을 원하지 않았다. 

 정의도 구원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타오를 것을 원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항상 그 불 속에 들어가야 했다. 

 페리클레스. 그리고 자신.






 그녀는 그 힘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웃음이 잠깐

 피와 함께 새어나왔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왜냐하면 연료는

 자신이 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도

 이미 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가

 묘하게 텁텁했다.


 낡은 콘크리트 냄새.

 금속 냄새.

 사람 냄새.




 “…이런 냄새였네.”



 세상은 항상 냄새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항상 무언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

 표정.

 흐름.

 감정.

 군중. 


 그것들이

 항상 더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느껴졌다.



 그녀의 심장이

 조용히 뛰고 있었다.



둥.

둥.

둥.


 아스파시아는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심장은 생각보다

 강하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상한 기억이 떠올랐다.



 페리클레스였다.

 그가 처음 웃던 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보던 눈.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그 밤.






 그녀는 눈을 떴다. 



 “…이상하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왜인지

 지워지지 않았다.





 아스파시아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천장은 낮았다.




 형광등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사람은 왜 누군가의 말에 움직일까. 

 그녀는 그걸 평생 연구했다.

 사람의 감정. 군중의 흐름. 권력.




 하지만 이제 처음으로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걸 원했을까.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페리클레스가

 말하던 순간.



 그는 정말로 믿고 있었다.


 사람들이 

 괜찮아질 거라고.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이용했다.




 하지만 지금 그 기억이

 이상하게 조금 따뜻했다.


 아스파시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나는…”




 “…무엇이었지?”





 그 질문은

 대답 없이 사라졌다.



 형광등이 천천히 깜빡였다. 










   출소한 날 비가 오고 있었다.


 큰 비는 아니었다.

 얇게 계속 떨어지는 비.


 아스파시아는

 교도소 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기자도 카메라도 군중도.


 뉴스는 며칠 더 떠들었고

 토론 프로그램이

 몇 번 더 방송되었고

 댓글이 조금 더 쌓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 사라졌다.




 플랫폼은 새로운 사건을 추천했다. 


 아스파시아의 이름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곳에 있었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세상은 이미

 다음 이야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늘 그랬다.

 무언가를 태우고

 그리고 다음 불을 찾는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까지.

 비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거울이 없었지만

자기 얼굴이 어떤지 알고 있었다.


 코는 조금 휘어 있었다.

 광대뼈 아래에는

희미한 흉터.

 교도소에서 몇 번 맞았다.



 예전 같으면

 수술 날짜부터 잡았을 것이다.

 페리클레스에게 받은

계약금이 아직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 얼굴이 지금의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버스가 왔다.

 아스파시아는 탔다.

 그녀는 창가에 앉았다.




 그리고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잠깐 봤다.


 낯설었다.

 하지만 어딘가 솔직했다.




 버스는 천천히

도시를 지나갔다.


 큰 빌딩들.

사람들. 카페. 불빛. 

 그 모든 것들이 예전과 같았다.


페리클레스의 이름은

아직도 가끔 올라왔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역사였다.





 버스가 강을 건넜다.

 물 위로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스파시아는

 창밖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뿐이다.


 먹고. 살고.

누군가를 붙잡고.

 누군가에게 붙잡히고.

 그것에 의미를 붙이고.







 누군가는 그녀를 알아봤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저 여자 그 여자잖아.



 사람들은 눈을 피했다.

 혹은 조금 더 오래 쳐다봤다.





 그녀는 그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증오도 아니고

연민도 아니고

그보다 더 편한 것.


 거리 두기.









 버스가 멈췄다.

 그녀는 내렸다.

 지방 도시였다.


 작은 거리. 술집. 편의점.

 그리고 어두운 강둑.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그날 밤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났다.


 평범한 남자였다.

 사업을 한다고 했다.

 돈도 조금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미소 지었다.

 부드럽게. 천천히.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남자는 금방

 그녀를 집에 데려갔다.


 그녀는 그의 집에서 살았다.


 좋은 집이었다.

 옷도 샀다.

백화점에서 수입 브랜드를 입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설계하지 않았다. 

 군중도 플랫폼도 언론도

 이제는 그녀의 세계에 없었다.



 어느 날

그 남자가 물었다.



"코 비뚤어졌다며.

 코 수술 안 해?"

 


아스파시아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굳이."



 남자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 얼굴을

그대로 두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어떤 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형광등

 콘크리트

 피 냄새

 그리고 어떤 문장.


 나는 그들의 연료다.




 아스파시아는

가끔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예전과 달랐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때 웃었다.


 지금은 그냥,

숨이 나올 때 가끔 같이 나왔다.






 그녀의 삶은

 아주 조용해졌다.


 군중도 권력도 서사도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작은 집

낯선 남자


 그리고 하루. 하루. 또 하루.


 아스파시아는

 그 삶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이제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 속에서 타는 것보다

 재가 된 뒤에 살아가는 것이

더 길다는 것을.






 아스파시아는 

 그 집 창문에서 강을 봤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그래. 이게 지금 내 세계다.

 작고 좁고 조용한 세계.




 그녀는 불을 껐다.



하지만 그녀가 체포될 때,

그 때 타오르던 불은

그녀 안에서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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