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14장
연료 (1)
페리클레스 집, 새벽
불이 켜져 있다.
그는 잠들지 않았다.
노트북.
핸드폰.
TV.
세 개가 동시에 켜져 있다.
TV 뉴스.
"베스트셀러 작가 페리클레스,
최근 온라인상에서 논란 확산"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사생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화면에
그의 얼굴이 나온다.
강연 장면.
웃고 있는 얼굴.
그 아래 자막.
"논란의 중심 인물"
핸드폰.
메시지 알림.
출판사.
"상황 정리될 때까지
외부 일정 전면 보류하겠습니다."
강연 기획사.
"이번 행사는 취소되었습니다."
모르는 번호.
"선생님 괜찮으세요?"
노트북.
댓글.
"이 사람 이제 좀 무서움"
"처음엔 진짜였는데
지금은 모르겠음"
"사람 하나 인생 망치기 전에
멈춰야 되는 거 아님?"
페리클레스는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그냥,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하나의 문장에 멈췄다.
"선택이 흐려진다."
그는 눈을 감았다.
강연장이 떠올랐다.
1,200명.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
울던 사람.
그리고.
댓글.
"흐려진다."
두 장면이 겹쳤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구분이 안 됐다.
"…내가."
그가 입을 열었다.
"…뭐지."
질문은 아니었다.
정체성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연락처.
아스파시아.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다른 목소리.
"이 사람 위험한 거 아님?"
두 개가 겹쳤다.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전화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을 한 번 둘러봤다.
그의 앞에는
골드 버튼.
그가 출간한 책.
그리고 부서진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노트북 액정은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
이걸로 원고를 썼다.
영상을 찍었다.
댓글을 읽었다.
아스파시아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한참 동안
그 부서진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치 저 안에 아직
자기 문장이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모든 콘텐츠는
진심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과 말로 연결되는 시간.
생각을 정리하고,
삶의 의미를 문장으로 건네는 시간.
그는 그것을 사랑했다.
그랬다.
분명.
진심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진심은
자기 자신을 지탱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 발짝 움직였다.
그리고 멍하니 멈춰섰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스파시아.
그는 화면을 봤다.
받지 않았다.
진동이 멈췄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발이 움직였다.
그는 책상 서랍으로 갔다.
세 번째 칸을 연다.
강연 준비 노트였다.
각 장마다
날짜가 있었다.
볼펜으로.
직접 쓴 날짜.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그의 글씨였다.
그는 자신의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두려움이 먼저라서다.
읽었다.
자기 문장인데,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다음 페이지.
상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다.
그 무게를 아직 들고 있는 사람이다.
이 문장을 썼던 날이
기억났다.
새벽 두 시였다.
혼자였다.
진짜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틀린 것 같지는 않았다.
손이 페이지를 넘겼다.
멈추지 않고. 자꾸.
연결은 기술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것은
당신의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오늘 여기 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문장들이 쌓였다.
전부 자기 것이었다.
전부 진심으로 썼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딘가가 조여들었다.
가슴이 아니라, 더 안쪽.
그는 노트를 내려다봤다.
이 문장들 안에
자기가 있어야 했다.
없었다.
글씨는 자기 것이었다.
잉크가 번진 자국도.
밑줄도.
근데 이걸 쓴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 문장을 짚었다.
오늘 여기 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얼마나 많이 했던 말인지.
사람들이 울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가서도
그 말을 들고 다녔다고 했다.
그는 그 문장을
지금 자기한테 해보려 했다.
안 됐다.
문장이 공중에서
그냥 떨어졌다.
그는 노트를 덮었다.
세게.
손이 떨렸다.
이 문장들로
수십만 명이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이 문장들 중
하나도 자기한테는 닿지 않았다.
왜인지 몰랐다.
아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서랍을 닫았다.
힘껏.
INTO THE 6TH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