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13장
내가 심지 않은 불 (3)
아스파시아 집, 밤
노트북 화면.
정지된 페이지.
삭제된 게시물.
아스파시아는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공백을 보고 있었다.
손을 움직였다.
로그를 열었다.
캡처를 복원했다.
캐시를 뒤졌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흔적이 남아 있었다.
IP.
접속 시간.
기기 패턴.
그리고 문장 지문.
하나씩.
맞춰갔다.
“개인 계정.”
중얼거렸다.
팔로워 23.
게시물 1.
익명.
…아니다.
완전히 익명은 아니다.
내가 확실하게
접근할 수 있는 건 문장구조.
패턴이 있었다.
문장 길이.
맞춤법 습관.
단어 선택.
페리클레스의 팬덤이 형성된
세 개의 다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문장을 찾았다.
하나의 사람.
거의.
특정된다.
아스파시아는 멈췄다.
이제 할 수 있다.
찾아갈 수 있다.
무너뜨릴 수 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내가 왜...?
그녀는 화면을 다시 봤다.
삭제된 게시물.
그리고
그 아래에 남아 있던
짧은 시간의 확산 그래프.
하나의 점.
그리고
퍼지기 시작한 흔적.
아스파시아의 시선이 멈췄다.
이건 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의 패턴이다.
그녀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찾아가서 끝내는 건 너무 작다.
정리는 지금의 흐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 흐름이다.
흐름은 이어가야 한다.
아스파시아는
새 창을 열었다.
새 계정.
가입.
아이디 입력.
비밀번호 설정.
그리고
타이핑했다.
"요즘 이 사람 얘기 많던데"
엔터.
게시됨.
잠깐의 정적.
좋아요 1.
→ 좋아요 3.
→ 좋아요 9.
아스파시아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커진다.
그녀는
노트북을 덮었다.
노트북 화면.
댓글 창.
커서가 깜빡였다.
아스파시아는
계속 댓글의 흐름을 보며
문장을 조정했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인 건 맞는데 —"
잠시 심호흡.
이어서 쓴다.
"가끔 말 듣다 보면
내가 뭘 선택해야 하는지
흐려질 때가 있음."
그녀는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공격이 아니었다.
변호도 아니었다.
애매했다.
그래서 오래 남을 문장이었다.
페리클레스에게도
직접적 타격은 덜하다.
이 흐름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녀는 업로드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몇 분 뒤.
좋아요 3.
댓글 1.
"나도 그 느낌 있음"
10분.
좋아요 27.
"맞아 나도 그래서 거리 두는 중"
"이 사람 싫진 않은데
뭔가 이상함"
아스파시아는
화면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더 건드리지는 않았다.
씨앗은 건드릴수록 죽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1시간 후.
좋아요 312.
댓글이 갈라졌다.
"이런 애매한 말이 더 위험함"
"그래도 맞는 말 같기도…"
"이 사람 쉴드 치는 애들 좀 이상함"
아스파시아의 손이 잠깐 멈췄다.
이건 원래 계획보다 빨랐다.
3시간 후.
좋아요 2,100.
클립 영상이 올라왔다.
페리클레스 Q&A.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믿어 준다는 건..."
문장들이
잘려서 돌아다녔다.
맥락 없이.
댓글.
"봐라 저거 방어하는 거다"
"자기가 틀렸을 수도 있다면서
왜 저렇게 확신함?"
"처음엔 좋았는데 요즘 좀 이상함"
이건 자기가 쓴
문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가 연 흐름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직까진 괜찮다.
구독자 +1,800
좋아요 폭증.
반박 댓글 증가.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커졌다.
애매한 주장을 가장 키워서,
그녀가 터뜨릴 때까지
그에 대한 평가를 묶어 둔다.
이 흐름으로 가면 된다.
아스파시아가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가슴이 미묘하게 뜨거웠다.
이건, 성공의 감각과 비슷했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뭐가 다른지는
지금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리고.
댓글 하나.
"이 사람 전여친한테
폭력 썼다는 얘기 돌던데?"
아스파시아는
여러 창을 오가던 손을 멈췄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완전히 다른 결이었다.
이미 삭제된 계정의 글.
심장이 한 번 더 뛰었다.
이번엔.
조금 더 빠르게.
그녀는 이해했다.
내가 만든 건 흐름이 아니라
입구였다는 걸.
그리고 지금.
사람들이 각자 자기 것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노트북을 닫았다.
다시 열었다.
그 몇 분 사이
댓글은 더 늘어나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페리클레스 집, 밤
노트북 화면.
댓글. 기사. 클립 영상.
모두 열려 있다.
"이상하게 선택이 흐려진다"
"이 사람 위험한 거 아니냐"
"처음엔 좋았는데 지금은 좀 무서움"
그는 하나씩 읽지 않았다.
그냥 흐름으로 봤다.
문장들이 의미가 아니라
압력으로 느껴졌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매니저.
"지금 상황 안 좋아요."
"알아요."
"강연 하나 취소됐어요."
침묵.
"두 개 더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페리클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노트를 폈다.
5챕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읽었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게 더 문제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는 다시 댓글을 열었다.
이번엔 하나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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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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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멈췄다.
아스파시아의 말이 떠올랐다.
"그게 진짜 여론인지,
그냥 몇 명이 쓴 건지 보세요."
그는 웃었다.
아주 잠깐.
"…몇 명이네."
그렇게 말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다시 스크롤.
다시 클릭.
다시 확인.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왜 같은 말을 하지."
다 다른 사람이었는데.
다 다른 계정이었는데.
문장은 같았다.
"흐려진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숨이 조금 얕아졌다.
"…내가 그런가?"
이건 처음 나온 질문이었다.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강연. 표정. 사람들.
울던 사람.
고개 끄덕이던 사람.
그리고, 자기 말.
"…아니야."
부정했다.
하지만.
이번엔 확신이 따라오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INTO THE 6TH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