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13장

내가 심지 않은 불 (1)





페리클레스 서재,  밤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쳤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출간 이후로는 거의 하지 않았다.

오늘까지는.

엔터.

뉴스 기사 하나.


[IT/문화]

"《진정한 사랑과 성장》, 

베스트셀러 이면에 '영향력 논란'"


클릭했다.
세 단락이었다.

조회수는 낮았다.

기자 이름. 날짜. 세 단락.
끝까지 읽었다.

아무 일도 아닌 기사였다.
그래야 했다.

하지만

스크롤.

댓글 창.
일곱 개.

그 중 하나.


"이 사람 영상 보면

이상하게 머리가 흐려진다는 느낌

 있는 사람 저만 아니죠?"

좋아요 400개.

그 아래.



"저도요"


"처음엔 좋았는데"


"뭔가 의존하게 만드는 느낌"


"사이비 영성가들 많다던데"


"나중에 강의팔이하는거 아님?"



멈췄다.

스크롤을 멈춘 게 아니라
생각이 멈췄다.


화면을 껐다.
다시 켰다.
다시 껐다.

앉아 있었다.


서랍을 열었다.
위스키를 꺼냈다.

이어서 잔을 꺼내려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병째 마셨다.

목이 탔다.



…이상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어제 강연.
지난 주 강연.
그 전 라이브.

어디서부터였지.



원고를 폈다.


5챕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읽었다.
다시 읽었다.


세 번째.

문장을 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다.


모르겠다.

틀린 문장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핸드폰을 들었다.
연락처를 스크롤한다.


아스파시아.


손가락이 그 위에

잠시 멈춰 있었다.

그는 그 이름을 눌렀다.










아스파시아 집,  같은 밤



핸드폰에

진동이 울린다.



페리클레스.

아스파시아가

화면에 뜬 그 이름을 본다.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스파시아."


목소리가 낮았다.
조금, 무너져 있었다.


"지금 괜찮아요?"


"…네."


침묵.


"기사 봤어요?"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그래도 물었다.




"어떤 기사요?"



"영향력 논란이요.
제 콘텐츠가 판단력을 흐린다는."


"아."


짧게.


"언제 난 거예요?"


"오늘."


"조회수는요?"



"낮아요.

근데 댓글이…"


"페리클레스."



그녀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부드럽게.



"조회수 낮으면

아직 아무것도 아니에요."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근데 저는 그 댓글들이,"



"그 댓글 단 사람들

계정 보셨어요?"





"팔로워 몇 명인지."



페리클레스는 생각했다.


"…안 봤어요."



"한번 찾아보세요.

요즘은 찾으려 하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요."




"그게 진짜 여론인지,
그냥 몇 명이 쓰는 건지."



침묵.



"확인해볼게요."



"네. 그리고."



아스파시아가 말했다.


"지난주 강연

1,200명이었잖아요."




"네."



"그 사람들이 답이에요."






답이 떨어졌다.
그는 그 말을 들었다.


틀렸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그 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통화가 끊겼다.



아스파시아는
꺼진 화면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천천히 노트를 펼쳤다.


짧게 썼다.


전화 옴.





그리고 한 줄 더.

예상보다 빠름.


펜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여

다음 계획을 적기 시작했다.








카페 정원, 며칠 후 저녁


페리클레스가

먼저 와 있었다.


아스파시아가 들어왔다.

그가 일어섰다.


지난 번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오늘은 일어섰다.


아스파시아는

그 차이를 모두 봤지만
모른 척했다.



자리에 앉았다.

페리클레스가

주문을 하러 갔다.

두 잔.
아메리카노.



그녀의 것도.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그녀의 취향을 알고 있다.


그것도 아스파시아는 봤다.

잠깐.
아주 잠깐.
그 디테일이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바로

그걸 머리속에서 지웠다.




페리클레스가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네.”


“힘들어요.”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었다.



“어제 강연에서 Q&A 시간에

누군가가 직접 물었어요.”



“‘선생님 콘텐츠가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뭐라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정면으로 반박했어요.”



그가 잔을 들었다.
마시지 않았다.



“근데 반박하면서도...


내가 지금 이걸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스파시아, 어제, 왜-"





그는 급하게 말을 멈췄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창밖.
밤거리.
빛이 지나갔다.



약간의 침묵 후
그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은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이미 자기 안에서

몇 번이나 반복된 문장이었다.



다만 지금, 

그녀의 입으로 부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스파시아가

그를 봤다.


이 문장.
이 문장이었다.



그녀가 언제 올지 몰랐던 문장.
오늘 온 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빠르네.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페리클레스가 그녀를 봤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 말이 공기 안에 놓였다.
부드러웠다.
단호했다.
따뜻했다.



잠깐.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의심할 필요도 없고요.”



페리클레스는

그 말을 들었다.


세상이 그를 오해할 때.
이 사람만이.



“사람들이 아직

당신을 이해 못하는 거예요.”





아스파시아가 말했다.



그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계속 의심할 수도 있었다.

자기 책임을 더 고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만뒀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 가능성을 놓아버렸다.




지금 그는

그 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맞는지 틀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한 갈망은,

그녀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페리클레스가

잔을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그 말 들으니까...
좀 나아지네요.”



아스파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하는 일은 맞아요.”



“네.”



페리클레스의 가슴 한구석이

움찔하더니

그 부분부터 무언가가

녹듯이 퍼져나간다.




“댓글 몇 개가

당신을 틀리게 만들 수 없어요.”



그는 가슴이 풀리듯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조금 더 힘을 내어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혼자 있으면 자꾸 흔들려요.”





“그러니까.”

그녀가 잠깐 멈췄다.
이 문장을

어디까지 밀어 넣을지

가늠하듯.


그는 그녀가 만든 공백에

빨려들듯 그녀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흔들릴 때

혼자 있으면 안 돼요.”




페리클레스가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인채,

그녀를 쳐다봤다.



“무슨 뜻이에요?”



아스파시아가 그를 봤다.


“흔들릴 때 혼자 있으면

더 흔들려요.

당신 주변에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 말이 또

둘을 감싼 공기 안에 놓였다.





그는 그 말 안에 있는 것을 들었다.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그의 갈망은

자신이 머물 자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녀의 문장 안으로

자기 발로 들어갔다.







대화가 계속됐다.

협업 일정.
다음 달 강연.
데이터 활용 방향.

그 안에서

페리클레스가 말을 많이 했다.


채널 운영 계획.
3년 뒤 그림.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들.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가고 싶은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아스파시아는 들었다.
메모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자기 손이 지나치게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마치 이 흐름을

더 오래 듣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그녀는 펜을 한 번 멈췄다.


다시 썼다.

페리클레스가

말하다가 잠깐 멈췄다.




“...이상하게 당신한테만

이렇게 말이 많아지네요.”



아스파시아가 그를 봤다.



“왜인 것 같아요?”



“당신이 들어주니까요.”



“들어주는 사람 많지 않아요?”




“들어주는 사람이랑”
“이해하는 사람은 달라요.”


침묵.



아스파시아가 커피를 마셨다.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말을 하면서
아주 잠깐,
그 말이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그 감각을 지웠다.


페리클레스가 그녀를 봤다.
아주 잠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다,

하지 않았다.


그냥 가지고 있었다.





둘은 카페를 나왔다.
서로 다른 방향이었다.


페리클레스가

먼저 걸어갔다.

아스파시아는 그 뒷모습을 봤다.
그가 멀어졌다.



그녀는 폰을 꺼냈다.
메모장을 열었다.



오늘 발화 내용


3년 계획, 

채널 수익 구조, 

장기 콘텐츠 방향.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인식하고 있음.



그녀는 다음 줄을

이어가려다가 손을 멈췄다.


그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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