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11장

씨앗 (3)




출간 기념 온라인 라이브



수천 명이 접속해 있었다.

조명이 켜졌다.
카메라 세 대.

페리클레스가

출판사가 준비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원고를 펼쳤다.
3분이 지나고, 덮었다.

카메라를 봤다.
아무 말도 없이 2초.
그리고.


“이 책을 낸다는 게

전혀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채팅이 멈췄다.
다들 그를 보고 있다.



“쓰면서

여러 번 지웠어요.”



“이건 너무

솔직한 것 같다고.”



“이건 너무

개인적인 것 같다고.”



“이런 걸 출판하면

우습게 보지 않을까.”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근데 그걸 지우면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제가 진짜로 겪은 것들,”


“진짜로 흔들렸던 것들,”


“진짜로 틀렸다가 다시 돌아온 것들.”




“그게 없으면

그냥 제가 아는 체하는 책이에요.”



채팅창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저도요"


"저도 그래서 못 쓰고 있는데"


"이거 듣고 눈물 나요"



페리클레스는

채팅을 보지 않았다.

계속 말했다.



“이 책에서 제가

제일 오래 들여다본

챕터가 있어요.”



“5챕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짧은 침묵.


“그 챕터를 쓴 건,”


“제가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그 사람이 저한테

이렇게 말한 날이에요.”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라이브가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처음엔 화가 났어요.

진심이었거든요.”



“근데 한참 지나서 보니까,
그 사람이 맞았어요.”



“제가 사랑이라고 부른 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그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을 가지려는 거였어요.”




멈춤.



그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 순간,
자신이 말하고 있다는 걸
늦게 알아챘다.


무슨 이야기가 나왔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왜냐면 저는

제 진심을 믿었거든요.”



“근데...”

“진심과 사랑은

다를 수 있더라고요.”


잠시,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터졌다.




"이거 제 이야기예요"


"지금 울고 있어요"


"남자친구한테 전화해야겠다"


"이런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분 진짜다"





그는 그냥 말했다.



자기가 진짜로 틀렸던 것을.
진짜로 부끄러웠던 것을.

그리고 수천 명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아스파시아 집, 같은 시간


노트북 화면이

어둠 속에서 떠 있었다.


댓글창이 흘렀다.


아스파시아는

댓글을 보지 않았다.
페리클레스를 봤다.


그의 말하는 속도.

멈추는 타이밍.

목소리의 높이.

분석이 시작됐다.

 패턴 추출.

구조 파악.

반응 구간...



그리고.


멈췄다.



그녀의 머리가 멈춘 게 아니었다.
분석이 작동하지 않았다.




0.5초.
찰나의 순간,

그녀는 그 감각을 알아챘다.


인식했다.
하지만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그걸 인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페리클레스의 목소리가

화면에서 흘렀다.


그 순간.
아주 짧게.


아름다웠다.



다시.
분석이 돌아왔다.
의식적으로.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계속 이름이 붙지 않았다.




 그녀의 입장에서

이 화면 안의 남자는 이랬다.


자신이 평생 설계해왔던 것을,

구조로, 프레임으로,

전략으로 만들려 했던 것,

집단 공명을,


이 남자는 진심 하나로

일으키고 있었다.


이 남자는

그걸 아무 도구 없이,


그냥 자기 존재 하나로

하고 있었다.


그것이 위협이었다.

그것이 자원이었다.



그리고,
그건 그 둘 모두가 아닌
어딘가였다.



그녀는 그 사실을 

노트북을 닫으면서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안서 읽었어요.

한 번 더 이야기 해봐요."







페리클레스의 서재




같은 날 저녁

 편집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라이브 예약 접속자가 

3만 명 넘었어요."


 3만 명.



 페리클레스는

그 숫자를 듣고 기뻤다.


 아스파시아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제안서 읽었어요.

한 번 더 이야기 해봐요."





 그는 이 문자를 한참 봤다. 


 재접근인지. 

협업 수락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아스파시아 집 — 다음날

계약서 초안이

메일로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조항 하나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공동 콘텐츠 데이터 소유권

협업 종료 후 양측 공유.



그녀는 메모를 남겼다.



데이터 소유권 각자 귀속.

공유 불가.







카페 정원, 두 번째 미팅.



아스파시아가

먼저 앉아 있었다.


오늘 그는 편했다.

두 번의 미팅이 쌓인 탓인지.

라이브가 잘 됐다는 안도감 탓인지.


아니면,

그녀가 협업을 수락했다는

사실 탓인지.


 말을 많이 했다.



 채널 운영 계획.

수익 배분 시뮬레이션.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지.

3년 뒤의 그림.




 아스파시아는 들었다.

메모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였다.





페리클레스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아스파시아의 눈빛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었다. 


 그녀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가 말하기 시작하는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멈추는 지점을 보고 있었다.


숨을 들이쉬는 패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면서

 패턴이 바뀌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녀의 손은

펜 끝을 종이에 누른 채,

의식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그 때,

 3년 뒤의 그림을 말하면서

페리클레스의 목소리가-


아주 잠깐 떨렸다. 



 확신에서

바람으로 바뀌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



저 사람,

지금 혼자다.


저기서 밀면 무너진다.


그 생각이

번쩍이고 사라졌다.



아니.

조금 더.






그녀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메모가 이어졌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져 있었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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