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11장
씨앗 (1)
아스파시아 집, 밤
그녀는 아직
재킷을 벗지 않은 채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봉투는 식탁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받았던 그대로.
아직 끝까지 읽지 않은
마지막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아스파시아는
그 한 장을 뒤집었다.
수익 배분 조건.
크레딧 구조.
데이터 소유권 조항.
그녀는 가만히
측량해 본다.
숫자 이면에,
이 판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를.
무게 중심.
흐름.
누가 쥐고 있는지.
북토크가 다시 떠올랐다.
오른쪽 구역부터
반응이 올라오던 순간.
파동처럼 번지던 감정.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던 남자.
자기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정렬시키던 사람.
페리클레스.
다시 군침이 고였다.
삼키지 않았다.
입 안에 잠깐 머물게 놨다.
그 감각을 확인하듯이.
그리고 그 뒤에 따라 올라왔던
차가운 감각을 되새긴다.
저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저게 나를 먹을 수도 있다.
그녀의 손이 노트를 펼쳤다.
고민이 생기면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 순간의
회계를 쓰기 시작했다.
[잃은 것]
투자.
프로젝트.
관계.
시간.
펜을 쥔 손끝에
그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5년.
돌려받지 못하는 시간.
펜이 다시 움직였다.
[잃지 않은 것]
어플 사용자.
데이터.
완료율 67%.
그동안 관찰한 것들.
그녀는 노트를 덮고
봉투를 서랍 안에 넣었다.
불을 끄고,
그녀는 그대로 누웠다.
눈을 감기 직전,
입 안에 남아 있던 감각이
아주 천천히 사라졌다.
페리클레스 서재, 같은 날.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청혼을 거절당한 뒤
아스파시아에게 연락하지 않고
책을 마감했다.
서랍 안.
반지 케이스는 그대로 있었다.
거절당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고를 썼다.
그녀의 거절이
자신의 논리가 틀렸다는 건
아니라고 믿었다.
그냥, 아직 내 말이
부족했다는 신호.
그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다른 해석도 생각해봤다.
그녀가 맞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돌아왔다.
자기 문장으로.
가장 오래 들여다본 챕터.
5챕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그 안에는
그녀의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전부
그녀에게서 시작된 문장이었다.
그는 등받이에 기대 앉았다.
천장을 봤다.
아스파시아 집, 며칠 후, 낮
전화가 연결됐다.
편집자 후배.
가벼운 대화.
근황.
책.
북토크 이야기.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늘 이런 전화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통화 말미.
“유튜버 페리클레스 알지?
그 사람 책 나온다 그러던데.”
씨앗을 심는다.
“요즘 유명하잖아.
혹시 유튜브라도 봤어?”
그녀는 말을 멈추고,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줬다.
“나 혼자만
이상하게 보는 건지
모르겠는데...”
조금 더 낮은 톤으로.
“이 사람 말 들으면,
뭔가 선택이 흐려지는 느낌
있지 않아?”
말투는 아무렇지도 않게,
궁금한 사람처럼.
그냥 질문처럼 들리게.
공격처럼 보이지 않게.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전부였다.
씨앗은 심어졌다.
어디로 갈지는
상대가 결정할 것이었다.
INTO THE 6TH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