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7장 

낙하 전의 정적 (4)




대학 캠퍼스 - 오후 4시




늦겨울의 하늘.

살짝 서리가 떨어진다.

 학생들이 지나간다. 





김교수의 연구실 - 오후 4시 10분




책장이 가득하다.

한가운데 책상에 김교수가 앉아 있다.


검은 뿔테 안경.

회색 니트.






 아스파시아가 들어온다.




 "교수님."





 "아, 왔어요. 앉아요." 




 아스파시아가

뜨거운 커피 두 개가 든 캐리어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앉는다.




 김교수는

커피를 건네받으며 말한다. 



 "고마워요.

프로젝트 잘 되고 있죠?" 




 "네. 감사하게도요."


 "숫자 봤어요.

1,200명 넘었더라고요."





 "네. 계속 늘고 있어요." 





 김교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요.

오늘 할 이야기는,..."





 그는 아스파시아를 본다.





 "아스파시아?

표정이 안 좋아요."






 아스파시아는 미소 짓는다. 





 "...괜찮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침묵. 



 아스파시아는 커피를 마신다. 





 김교수는 기다린다. 





 "...고민이 있어요."





"프로젝트 관련?"

 




"그것도 있고...

개인적인 것도요."




 "말해봐요." 




 아스파시아는 잠시 망설인다. 

그리고 말한다. 




 "제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어요."




 "아, 그래요?" 





 "네. 그 사람이...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싶대요." 





 김교수는

커피를 내려놓는다. 





 "...얼마나요?" 




 "3천 5백."




"음..." 




 김교수는 생각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금액.




 "그 사람 직업이 뭔데요?"



 "유튜버요.

구독자 100만."




 "와. 대단한데요."




 "네..."




 김교수가 묻는다.




 "근데 왜 고민이에요?

투자받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아스파시아는

손목의 시계를 본다. 



 김교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시계를 한 번 본다.

 아스파시아의 손목.




 아스파시아가 먼저 말한다.




“교수님도 아시죠.

이거 왜 불편한지.”



 김교수, 웃는다.

짧게.





“알죠.”





김교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잠시 생각하더니,

캐주얼하게 내뱉는다.





“나도 예전에

그쪽 자리에 앉아봤거든요.”





 아스파시아,

고개를 들어 교수를 바라본다.




 “투자자요?”





“음, 도움 주는 자리. 

그거 위험해요."





“?”




 “돈은 계약이라도 남죠.” 




 김교수는 컵을 내려놓는다.




“마음은

나중에 계산서가 와요.”





 아스파시아는 시계를 만진다.

내가 생각한 것과 정확히 같아.





“그 사람

아직은 계산 안 했어요.”




“그게 문제죠.”





 김교수는

담담하게 말한다.





 “계산 안 한 호의는 

꼭 나중에 상대 인생에 청구됩니다.


문제는, 

그게 나중일 수록

청구서 금액이 올라간다는 거.”






 아스파시아는 한숨을 내쉰다.






“그럼 받지 말아야 하나요?” 





 김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받을 수 있어요.”




“다만.” 



 김교수는 그녀를 본다.




 “받는 순간

당신이 빚졌다고 느끼면

그건 이미 늦은 거예요.”




침묵.





“지금 느껴요?” 




 아스파시아는 

바로 답하지 않는다.

 잠시 후.





“…조금요.” 





“그럼 답은 이미 나온 거죠.”






 아스파시아가 묻는다.





 “그 사람한테

뭐라고 말해야 하죠?”





 김교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한다.





“설명하지 마요.

설득도 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말해요.”




 “이건 아직

내 속도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 다음 반응을 보세요.” 






“만약 상처받으면요?” 



 


“상처받을 수도 있죠.”



“근데 당신 인생은

남 상처 안 받게 하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잠깐 정적.

김교수는 덧붙인다.






“굳이 오래 갈 남자를 찾고 싶다면

도와주는 게 아니라

기다려주는 남자를 찾아요.” 







“못 기다리면

그건 사랑 말고 다른 거래일 거요.”






 아스파시아는 고개를 숙인다.

 둘은 더 말하지 않았다.



교정을 걸어나오며

 아스파시아는 핸드폰을 본다.

메시지 세 개. 




"지금 뭐해요?"

 "저녁 먹을래요?"

"보고 싶어요." 



페리클레스.

 아스파시아는 생각한다.




경계.





 그녀는 타이핑한다.




"저녁 먹어요.

할 얘기가 있어요."









이탈리안 레스토랑 - 밤 7시 30분





 페리클레스가 먼저 와 있다.


 문이 열린다. 

 아스파시아가 들어온다.

 검은 코트. 머리는 뒤로 묶었다. 

 화장은 평소보다 연하다. 




 페리클레스가 일어난다.





 "왔어요."




"네."





 아스파시아가 앉는다.

 웨이터가 온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아직이요."




 웨이터가 간다. 

 침묵. 





 페리클레스가 먼저 말한다. 





 "할 얘기가 있다고 했죠?"




 "네." 




 아스파시아는 그를 본다. 





 "...투자 얘기요."





 "아, 네. 생각해봤어요?"



 "네."



 아스파시아는 손을 모은다.




 테이블 위.

 손목의 시계가 빛난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페리클레스는 미소 짓는다. 





 "당연하죠.

 당신 프로젝트니까."





 "하지만..." 


 아스파시아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간다. 





"이건 아직 내 속도가 아니에요." 





 페리클레스는 눈을 깜빡인다.



 "...네?"




 "지금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가고 싶어요."






 "하지만 기회가—"





 "기회는 또 올 거예요." 





 아스파시아는 차분하다. 



 "지금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페리클레스는 그녀를 본다. 





 "...제 투자가 부담스러워요?" 





 아스파시아는 고개를 젓는다. 




 "부담스럽다기보단..." 





 그녀는 말을 고른다. 





 "...제가 이 프로젝트의 하중을

아직 다 못 재봤어요."





 "하중이요?"




"네."





 아스파시아는 설명한다.





 "지금 사용자 1,200명이에요.

 근데 갑자기 3천만 원 투자받아서

서버 키우고 마케팅하면

 사용자가 5천, 1만 될 수도 있죠."




 "...그게 좋은 거 아닌가요?"





"좋아요. 근데..."



 아스파시아는 테이블을 본다.



 "그 무게를 지금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페리클레스는 침묵한다.







 "콘텐츠도 더 만들어야 하고,

CS도 해야 하고, 

 시스템도 관리해야 하고..."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아스파시아는 그를 본다.




 "...고마워요." 




 "진짜로요. 저도 같이" 





 "그게 문제예요." 




 아스파시아의 목소리가

조금 단단해진다. 





 "당신이 도와주면 

이게 제 프로젝트인지

우리 프로젝트인지 모르겠어요."





페리클레스의 등이 경직된다.





 "...저는 그냥 돕고 싶은 건데요." 













 "알아요.

 당신 진심 알아요.

 근데..."





 그녀는 손목의 시계를 본다. 





 "이 시계도 당신이 줬잖아요."





 페리클레스는 시계를 본다.




 "...네."





 "이거 받았을 때 기뻤어요.

진짜로."




 "...근데요?"





"근데 동시에 무거웠어요."




그녀는 페리클레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850만 원짜리 마음은

가볍지 않죠."





 페리클레스는 숨을 들이킨다.






 "...그건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알아요.

마음이 중요한 거죠." 





 아스파시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마음이 850만 원짜리로

표현되는 순간,

그건 마음만은 아니에요." 






 침묵. 




 페리클레스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른다. 




 "저는..."





 그는 말을 찾는다. 




 "당신한테 잘해주고 싶었어요.

부담스럽지 않게

모델도 가장...



페리클레스는 말을 멈췄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면

대화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 같았다.





"그게 잘못인가요?




 "잘못은 아니에요."





 아스파시아는

부드럽게 말한다.




 "그런데 호의에는

항상 무게가 따라와요."




페리클레스가 고개를 든다.




 "...무게요?"




"네." 




 아스파시아는 그의 눈을 본다. 






 "받는 순간,

그 무게는 제 쪽으로 넘어와요.


제가 10년 동안

배운 게 하나 있어요.

내게 오는 호의가 많아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들었어요.”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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