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7장

낙하 전의 정적 (3)




고급 레스토랑 'Fiore Bianco'

밤 8시 30분




 샹들리에가 빛난다.


크리스털 조명.

대리석 바닥.

흰 테이블보.


 은색 커트러리가 빛을 반사한다.

 창밖으로 서울 야경이 보인다.



 한강. 남산타워.

불 켜진 빌딩들.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가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 와인 두 잔.

 메뉴판이 놓여 있다.



 아스파시아는

검은 드레스를 입었다. 

 목걸이에 귀걸이까지,

화장은 평소보다 진하다.


 페리클레스는

 회색 셔츠에 검은 재킷.


 두 사람 모두

평소보다 격식을 차렸다.




 아스파시아가 와인잔을 든다.




 "축하해요. 진심으로." 




 페리클레스도 잔을 든다.



 "...고마워요." 


 두 잔이 부딪친다.


 따르릉. 

 맑은 소리.



 페리클레스는 와인을 마신다.



 한 모금.




 아스파시아는 그를 본다.




 '...긴장했네.' 




 그의 어깨가 올라가 있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다.


 100만 구독자인데.

 왜 편해 보이지 않지?






"기분이 이상해요?"




 페리클레스는

잔을 내려놓는다.



 "...어떻게 알았어요?"




 "표정이요."



 아스파시아는 미소 짓는다. 




 "당신 표정

저 이제 읽을 수 있어요."





페리클레스는 웃는다.



 "...그러게요."



 침묵.



 와인잔에 빛이 반사된다.

 페리클레스가 말한다.



 "갑자기 너무 많이 들어와서요. 

 출판 제의, 강연, 방송... 감사하지만..."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아스파시아는 기다린다.




 "...부담스러워요."

 


"당연해요.

갑자기 바뀌면 누구나 그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적응할 거예요.

당신이니까."




 페리클레스는 그녀를 본다. 



 "...그럴까요?"



"네. 확실해요."


 아스파시아는 진심이다.

 적어도 80%는.

 나머지 20%는...




 '이 사람이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알 수 없다.



 100만은

작은 숫자가 아니다. 


 100만 명의 시선.

100만 번의 기대.

100만 개의 욕망.



 그것을 감당하려면...





 페리클레스가 묻는다.




 "당신은... 어때요?

프로젝트 잘 되고 있죠?"




 "네. 순조로워요."





 아스파시아는 미소 짓는다.





 "사용자도 늘고, 수익도 나고."




"...다행이에요."



 "당신 덕분이에요."



 "...제가요?"



 "네. 당신이 준 조언들,

다 쓰고 있어요."



 페리클레스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에요. 당신이 잘한 거예요."





 두 사람은 미소 짓는다. 




 웨이터가 온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네. 트러플 리소또 하나,

랍스터 파스타 하나요."



 "알겠습니다." 



 웨이터가 간다. 






 침묵. 

 와인잔이 빛난다.



 페리클레스가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뭔가를 꺼낸다.

 작은 상자.



 아스파시아는 상자를 본다.




페리클레스가 그녀에게

상자를 밀었다.




"선물이에요."



 아스파시아는 상자를 받는다.


 손에 닿는 벨벳.

부드럽다.

 그녀는 상자를 연다.




 시계.


 은색 프레임.

파란 숫자판.

파란 바늘.


 Cartier Ballon Bleu.




 아스파시아는 알고 있다.

 이 시계의 가격을.




'...800만 원.'

 아니, 정확히는 850만 원 정도.



 그녀는 시계를 본다.

 예쁘다.

 하지만 동시에...




 ...무거워.



 페리클레스가 묻는다.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아스파시아는 미소 짓는다.


 그리고 시계를 찬다.

 손목에 차가운 금속. 딸깍.

 잠금장치가 채워진다.



 그녀는 손목을 본다.



 시계가 빛난다.



 "잘 어울려요."



 페리클레스가 말한다.



 "...예쁘네요." 



 아스파시아는 손목을 돌린다.

 시계가 반짝인다.





 그녀는 알고 있다.

 남자들은 그냥 돈을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선물은 메시지다.

 800만 원짜리 시계.



 그것은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만큼 투자할 수 있어.'

 '나는 당신을 이만큼 아껴.'

 '나는 당신이 이만큼 가치 있어.' 



 하지만 동시에 말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만큼 줬어.' 

 '당신은 나에게 이만큼 빚졌어.' 

 '우리 사이는 이만큼 값어치가 있어.' 







 10년 전. 

대출을 갚기 위해

잠깐 룸살롱에서 일했다.


사람들의 욕망을 다루는 법을

알고 싶기도 했다.





 그때 선물은 많이 받아봤다.

이 시계는 그때 주변 친구들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이 세계 입문 장비처럼.


물론 아스파시아도.

지금은 팔아서 없지만.





 시계. 가방. 보석.

그녀는 안다. 

 선물이 무엇인지.



 '사랑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거래의 증서.'




 하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그의 손을 잡는다.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페리클레스는 미소 짓는다.




 "당신도요."



그의 표정에는 아무 계산도 없다.

 그냥 주고 싶어서.

그게 전부다.


 아스파시아는 그걸 알아본다.





여자에게 쓰는 돈으로

비싼 가격은 아니다.

더 비싼 것들을 받아 봤다.


하지만 이 시계는

그곳에 있을 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이 남자의 순수함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 때 메시지가 날아올 거다.



손목이 서늘하다.

뒷목이 조금 뻐근하다.

 시계는 반짝인다.



 아스파시아는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신다.



 음식이 온다.

트러플 리소또. 랍스터 파스타.



 아스파시아는 접시를 보다가

손목을 한 번 더 본다.





 ‘…이 관계는

어디까지 가게 될까.’



답은 아직 없다.

 시계의 파란 바늘이

천천히 움직인다.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카페 정원 - 오후 2시





아스파시아와

페리클레스가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 두 대.



 아스파시아의 화면에는

프로젝트 현황이 떠 있다.


프로젝트 현황

활성 사용자: 1,247명 (+400) 

프리미엄 전환율: 9.1% (+0.8%) 

월 수익: ₩6,890,000 (+60%) 



 현안

서버 용량 확장 필요

콘텐츠 제작 속도 한계 

마케팅 예산 부족



 페리클레스는 화면을 본다. 





 "잘 되고 있네요."




 "네. 근데..."


 아스파시아는 스크롤을 내린다.




예상 비용 (향후 3개월)


서버 확장: ₩15,000,000

콘텐츠 제작: ₩8,000,000

마케팅: ₩12,000,000


총계: ₩35,000,000




"...자금이 좀 필요해요."




 페리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나요?"




 "3천 5백."




 "만 원요?"




 "...네."





 침묵.




 페리클레스는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투자할게."




 아스파시아는 그를 본다.





 "...네?"




 "내가 투자할게요. 3천 5백." 




 "아니, 근데..."




"지금 여유 있어요.

광고 계약 하나 했거든요."




 페리클레스는 미소 짓는다.



 "X성이요. 1억 2천." 




 아스파시아는 숨을 멈춘다.




'...1억 2천?'



 "그러니까 3천 5백 정도는

문제없어요." 





 페리클레스는 자연스럽다. 




 "함께 해요."




 아스파시아는 노트북을 본다. 

화면의 숫자들.



 ₩35,000,000


 그리고 페리클레스의 말.





 "내가 투자할게."






 이 말이 묘하게 걸린다.




"...고마워요."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괜찮아요."



 페리클레스는 눈을 깜빡인다.



 "...?" 






 "네. 지금도 나쁘지 않거든요."





 "하지만 확장하려면—"





 "확장은 나중에 해도 돼요."




 아스파시아는 미소 짓는다. 





 "지금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고 싶어요."




 페리클레스는 그녀를 본다. 



 "...그래요?" 



"네."




 침묵. 



 페리클레스는 커피를 마신다.




 "알겠어요.

 당신 결정이 중요하죠." 




 "고마워요." 





 "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요." 



 "...네." 



아스파시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다른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지원이 고마우면서도

 숨이 막히는 건 왜일까?


지금 그와 함께 간다면,

무게 계산을 못해서

분명 건물이 무너질 것 같다.




 페리클레스는 좋은 사람이다. 

진심으로 돕고 싶어한다.

하지만...




 내가 그의 돈으로

 이 프로젝트를 키우면,

나중에 생길 변수가

아직 예상이 안된다.





 페리클레스가 말한다.




 "참, 다음 주에 방송 촬영 있어요."




 "...방송이요?"




"네.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와..."




 아스파시아는 미소 짓는다. 





 "축하해요."





"고마워요. 근데 좀 떨려요." 




 "잘할 거예요." 




 "...그럴까요?"




"확실해요." 





 페리클레스는 미소 짓는다.





 "당신이 그러니까 안심돼요."




 그는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당신 덕분이에요. 다요."


 아스파시아는 손을 빼지 않는다.

 하지만 손목의 시계가

무겁게 느껴진다.



 카르티에.

850만 원.







아스파시아 작업실 - 밤 11시





 아스파시아는 혼자다.


 모니터 앞.

 화면에는 엑셀 시트가 떠 있다.



자금 계획 

 현재 보유: ₩8,200,000

월 수익: ₩6,890,000

필요 자금: ₩35,000,000


 옵션 1: 페리클레스 투자 

장점: 빠름, 확실함

단점: 의존, 빚 



 옵션 2: 자체 조달

장점: 독립, 자유

단점: 느림, 불확실



 아스파시아는

피젯 스피너를 돌린다.


회전.

회전.

회전.



 '내가 원하는 건 뭐지?'



 그녀는 생각한다.



 성공?

그렇다.


사랑?

...그것도 그렇다.

음...그런가?


 우선 그렇다 치고

둘 다 동시에?




 '그게 가능한가?' 




 그녀는 알 수 없다. 



10년 전, 그녀는 배웠다. 

 '사랑과 돈은 섞이면 둘 다 망가진다.' 





 남자들은 돈을 주고,

 여자들은 사랑을 주는 척하고,

 결국 둘 다 거짓말이 된다.


 얇은 얼음판같은 거짓말,

거짓말로 만든 이야기 위에서

최대한 강을 빨리 건너야 한다.

목적지에 최대한 빨리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다르다. 

 그는 진심이다. 정말로.







 '...그래서 더 무서운 거야.'



 진심이 무섭다.

 진심은 책임을 요구한다.

 진심은 자발적인 빚을 만든다.


 진심은... 뒤틀렸을 때,


 띠링- 핸드폰이 울린다.







페리클레스


"잘 자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




 아스파시아는 핸드폰을 본다.

 그리고 타이핑한다. 



"네. 잘 자요."

 전송.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화면을 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스파시아 작업실 - 다음날 오후 3시


 아스파시아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밤새 잠을 못 잔 것 같다.

 눈 밑에 다크서클.

머리는 묶지 않았다.

 커피잔이 세 개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모두 비어 있다.



 모니터 화면.



시뮬레이션 1

페리클레스 투자


 시뮬레이션 2

자체 조달



 아스파시아는

두 시뮬레이션을 본다.

 숫자는 명확하다.


 페리클레스 투자를 받으면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확실하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이 건물의 하중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어.'




 그녀는 창밖을 본다.

2월의 하늘. 흐린 구름.




 '내가 원하는 건 뭐지?'




 그녀는 자문한다.








FLASHBACK



룸살롱. 수정언니. 

 "언니는 약간 지적인 매력 쪽이구나~

 근데 그 눈매는

너무 생각 많아보이잖아~" 



성형외과 밀집 거리.

 "나는 네 가죽 위에 난 길이 향하는 

종착지가 될 거야" 


 카드 한도 초과 알림.

₩23,000,000



END FLASHBACK





 아스파시아는 눈을 감는다.




'...그래.' 




 그녀는 2천만 원을

자기 얼굴에 쏟아부었다.

세상 위에 서고 싶어서.

얼굴은 그 계단 중 하나였다.




 핸들을 잡는 위치로

가고 싶었다.


사람은 너무 감정적이고,

방향을 몰라.


그들에게 내 방향을 맡기고 싶지 않아.







 '그리고 지금은?'






 지금 페리클레스는

그녀를 예쁘다고 한다.

 지적이라고 한다.

그것이 매력적이라 한다.


 내가 제시한 방향대로

콘텐츠를 성공시켰다.






 '...그런데 왜.'





왜 그의 투자를 받으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는 것 같지?


 왜 그의 돈을 받으면

다시 누군가에게 빚진 것 같지?


 그의 감정에,

 지금 내 핸들이 휘둘리고 있는 건가? 



띠링- 핸드폰이 울린다.

메시지.





김교수


"시간 있어요? 커피 한잔해요.

할 얘기가 있어요."






 아스파시아는 핸드폰을 본다. 


김교수.

 프로젝트의 자문 교수.

 사회심리학 전공.




 '...지금 딱 필요한 사람이네.' 




 그녀는 타이핑한다. 




"언제요?"



"지금? 시간 돼요?"



"좋아요. 어디서 만날까요?"



"내 연구실로 와요."



"갈게요."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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