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6장
익명의 손 (1)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백색 빛이 어두운 방을 채우고 있다.
페리클레스는 노트북 앞에 앉아
아스파시아의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고 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마우스를 쥔 손가락에 미세한 긴장이 보인다.
[아스파시아 인스타 피드]
사진 하나.
흰색 화이트보드 앞에 선 두 사람.
아스파시아와...
50대 중반의 남자.
AFFECTUM 프로젝트 진행 중.
김 교수님과 함께.
페리클레스는 사진을 확대한다.
김교수의 손이
아스파시아의 손 근처에 있다.
정확히는...
손에 닿지 않았지만,
그 거리가 애매하게 가깝다.
페리클레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클릭. 다음 사진. 카페.
아스파시아와 김교수가
마주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다.
역시 짧은 캡션.
오늘도 좋은 논의.
감사합니다, 교수님.
페리클레스는 사진 속
김교수의 미소를 응시한다.
페리클레스는 노트북을 닫는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뭐야."
침묵.
그는 벌떡 일어난다.
노트북을 다시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는 새 영상 초안을 작성한다.
제목:
선의로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여러분, 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뤄볼까 합니다.
선의.
누군가 당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우리는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모든 도움이 순수할까요?'
페리클레스는 타이핑을 멈춘다.
화면을 응시한다.
커서가 깜빡인다.
특히 권위 있는 사람이
당신보다 어린,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그의 손가락이 멈춘다.
문장이 완성되지 않는다.
페리클레스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문 앞으로 간다.
밤의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뭐 하는 거야, 나."
그는 자기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다.
커서가 여전히 깜빡이고 있다.
"도움을 준다 하는 사람들이
다 괜찮은 건 아니잖아..."
침묵.
"누군가는 말해 줘야..."
그는 마우스를 쥔다.
저장 버튼 위에 커서를 올린다.
클릭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스크롤을 올린다.
자기가 쓴 문장들을 다시 읽는다.
"선의로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도움을 준다는 말 뒤에..."
"도움..."
페리클레스는
화면을 응시한다.
자기가 쓴 문장이
눈앞에서 일그러진다.
"...아."
그는 천천히
Delete 키를 누른다.
문장이 지워진다.
단락이 사라진다.
그는 멈추지 않는다.
전부 지운다.
빈 화면.
커서만 깜빡인다.
페리클레스는
의자 등받이에 기댄다.
천장을 올려다본다.
"내가... 뭘 하려던 거야."
' 그녀를 지키려던 거?
아니면 그녀를 소유하려던 거?
도움을 주려던 거?
아니면 그녀를 내 곁에 묶어두려던 거?'
'...구분이 안 되네.
미치겠다...'
그는 마른세수를 하고
다시 노트북을 본다.
새 문서를 연다.
타이핑한다.
[새 메모]
1. 나는 왜 김교수가 불편한가?
2. 정말 그가 위험해서인가?
3. 아니면... 질투인가?
4. 이 도움 정말 그녀를 위한 거였나?
5. 아니면 내가 그녀를 내 옆에 두고 싶어서였나?
페리클레스는
5번 질문을 응시한다. 오래.
그는 노트북을 닫는다.
페리클레스는 핸드폰을 집어 든다.
아스파시아의 인스타를 다시 연다.
김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이번엔 다르게 보인다.
김교수의 손은 어깨에 닿지 않았다.
적절한 거리.
아스파시아의 표정은 편안하다.
위협받는 것 같지 않다.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그냥 일이구나."
그는 한숨을 쉰다.
"내가 끼어들 자리가 없어."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래. 이게 맞는 거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창밖의 도시 불빛만 그를 비췄다.
김교수 연구실 - 오후 3시
화이트보드에
빼곡한 다이어그램.
AFFECTUM 플랫폼 설계도.
사용자 흐름.
데이터 수집 알고리즘.
김교수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마커로 추가 노트를 적고 있다.
아스파시아는 노트북 앞에 앉아
대시보드를 확인하고 있다.
김교수가 묻는다.
"지난주 베타 테스트 결과는
어땠어요?"
"긍정적이었습니다.
사용자 참여율 78%.
평균 체류 시간 23분.
예상보다 높아요."
"좋네요.
감정 데이터 수집은?"
"순조롭게 쌓이고 있습니다.
이 속도면 2주 안에
충분한 샘플 사이즈 확보 가능해요."
김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짧은 시간 내에
여기까지 왔다는 게 놀랍네요.
아스파시아."
"계획대로입니다."
그녀는 화면을 응시한다.
완벽한 그래프들.
상승하는 지표들.
차곡차곡 쌓이는 데이터.
아름다워.
그러다 아스파시아의 눈이
하나의 수치에 멈춘다.
[대시보드 화면]
서버 응답 속도: 평균 1.2초 → 1.8초
(지난주 대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다.
"...교수님.
서버 응답 속도가 느려졌어요."
김교수가 다가온다.
화면을 보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1.8초?
아직 괜찮은 속도 아닌가요?"
"일주일 전엔 1.2초였어요."
"사용자가 늘어나서
그런 거 아닐까요?
트래픽 증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아스파시아는 대답하지 않는다.
스크롤을 내린다.
더 많은 데이터를 확인한다.
[추가 지표]
데이터베이스 쿼리 시간:
평균 0.3초 → 0.6초
메모리 사용률: 62% → 78%
아스파시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교수를 바라본다.
"...뭔가 이상해요."
김교수가 의자를 당겨 앉더니
화면을 자세히 본다.
"음... 확실히 전반적으로
느려지긴 했네요.
하지만 아직 임계치는 아니에요.
최적화 작업을 조금 앞당기면,"
"교수님, 언제부터였죠?"
"네?"
"이 속도 저하.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죠?"
아스파시아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직접 시간대별 그래프를 연다.
클릭. 확대.
"교수님.
11일 전부터네요."
"그때 뭐
특별한 일 있었나요?"
"...새 알고리즘 배포했어요.
감정 분석 정확도 향상 버전."
"그럼 그게 원인일 수도 있겠네요.
알고리즘이 더 복잡해지면서
연산량이 늘어난 거 아닐까요?"
"테스트에선 문제없었어요."
"실제 환경은
다를 수 있잖아요."
아스파시아는
노트북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개발팀한테 연락해볼게요."
INTO THE 6TH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