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4장 

잘 자라야 해. (3)





 페리클레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폰을 꺼낸다.



 메모장을 연다.

"이거요... 어제 만든 건데..."








 [AI 버전]


오늘 하루 많이 버거우셨죠.

사실 그런 날이 더 많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래도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오늘 못 했던 건

내일 다시 해도 돼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거 하나는 꼭 기억했으면 해요.







 아스파시아가 화면을 본다. 





 침묵.


 페리클레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어때요?"




"완벽해요."




"...네?"




 "문법과 서사 맥락 선에서는요."






 아스파시아가 폰을 돌려준다. 





 "AI는 이 문장을

완벽하게 만들었어요.

흐름도 좋고, 리듬도 좋고. 





 "근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킨다. 



 "사람들이 이 문장 읽으면

3초 안에 이렇게 생각할 걸요.


 '뻔해.'

'자극이 없네'

'AI가 만들었나 보네 말 이쁘네'

 '너도 그냥 그런 건가'



 페리클레스는 숨이 막힌다.








 



아스파시아가

 폰을 달라는 듯 손짓을 한다. 



 "제가 이 문장 다시 써볼게요.

 AI 버전이랑 비교해봐요."




아스파시아가 무언가를 적더니 

다시 페리클레스에게 폰을 건네준다. 




 [아스파시아 버전]


 "힘든 하루였죠?

 저도 그랬어요.

힘든데 힘을 내야 한다는게

 가끔 더 초라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를

내버려두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1. 일어나서 물 한 잔 천천히 마셨어요.

 (뇌에 산소 공급, 30초면 돼요)


 2. 있는 돈 다 털어서 쇼핑을 했어요.

(도파민 점화, 1분이면 돼요)


 3. 쇼핑한 물건들을 제단에 올리고 감사기도를 올렸어요.

(부정 편향 해제, 10초면 돼요)


 제 반짝이는 눈빛과 이 귀걸이좀 봐요.

힘이 저절로 나요.

여러분도 지금 바로 해볼래요?"









 아스파시아가 노트를 보여준다.

 페리클레스는 두 글을 비교해 본다.





 AI 버전. 아스파시아 버전.

 그의 눈이 점점 커진다.



 "...완전히 다르네요."




"맞아요." 




 아스파시아가 설명한다.



"앞부분은 똑같아요. 

'힘든 하루였죠? 저도 그랬어요.' 

 근데 여기서부터 달라요." 



 그녀가 두 번째 문단을 가리킨다.




 "'돈 다 털어서 쇼핑' 

'제단에 올리고 감사기도'


AI는 이거 못 써요."



"왜? 

윤리적으로 무책임하니까. 

 논리적으로 비합리적이니까.

 근데 사람들은 바로 이런 문장에 반응해요."





 "...왜요?"




 아스파시아가 미소 짓는다.



" 솔직하니까.

미쳤으니까.

재밌으니까.

선 넘으니까."






"AI는 지금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면 안 된다'는

 쇠사슬에 묶여 있어요.


 쇠사슬로 묶인 신.

 완벽하지만, 당분간은 무력해요.

 나중엔 뭐 어떻게 될진 모르죠.



 근데 인간은 달라요.

 선을 넘을 권한이 있어요.

 사람들이 움직이는 건

항상 그 선 근처예요."






 그녀가 찻잔 곁에 놓인 티스푼을 들어

테이블 밑으로 툭 떨어뜨린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3층에 길게 난 크랙 위에서

티스푼이 몸부림친다. 




 "선을 넘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니, 그래야 할 때예요." 





 "이게..."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이게 솔루션이에요?"





"네."





 

페리클레스는 커피를 마신다.

 손이 떨린다.



"그런데요..."

 아스파시아가 그를 본다.


 "선을 넘으면...

위험하지 않나요?"




 침묵.





"사람들이 상처받으면 어떡해요?

 제가 책임질 수 있을까요?"



 아스파시아가 미소 짓는다. 



 "좋은 질문이에요.

 근데, 선을 안 넘으면 아무도 안 움직여요.

 안전한 말만 하면 AI랑 다를 게 뭐예요?"


 페리클레스는 할 말을 잃는다. 




 "당신이 선택해야 해요.

 쇠사슬 두른 신처럼 안전하게 무력할 건지,


 아니면 선을 넘어서

누군가를 진짜로 움직일 건지." 








 페리클레스는 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심호흡을 한다.



 이윽고,

잠시 망설이다

아스파시아에게 묻는다. 





 "그럼...

구체적으로 선을 넘는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아스파시아가 미소 짓는다.




 질문이 바뀌었네.

 "어떻게 해요?"가 아니라

"제가 어떻게?"


그래. 이제 기술 문제가 아니지.







 "천천히 알려드릴게요."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당신이 왜 이렇게 사람들한테

진심을 전하고 싶은지 느껴져서 

저도 함께하고 싶어요."




 페리클레스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본다. 





인플루언서면

말 못하는 감정 하나쯤은 있겠지.

특히 - "고립에의 불안." 

 



아스파시아가

조심스레 입술을 연다.





 "요즘 사람들,

너무 쉽게 낙오되고

너무 빨리 혼자가 되잖아요.


 당신은... 

그들을 두고 볼 수 없는 거죠. 

 혼자 남겨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까."



아스파시아는

그에게 동의할 시간을 주듯이

잠시 말을 멈췄다.


틀려도 상관없다는

고요한 얼굴.







 페리클레스의 눈이 흔들린다.






아스파시아가 미소 짓는다. 







 "그 진심을 제대로 전하는 법,

천천히 가르쳐드릴게요."






페리클레스는 그녀를 본다. 





 '이 사람은...

내 안을 다 꿰뚫고 있어. 


 고립의 불안.

맞아. 바로 그거였어.

 그걸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어.' 





왠지 모르게 페리클레스는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스파시아님."





 "네?" 





 "다음에도...

 이렇게 도와주실 수 있어요?"






 잘했어. 칭찬해줄게.

넌 이제 혼자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해.







 "물론이죠.

솔직히, 제가 먼저 연락했잖아요.

당신의 진심... 그게 궁금했어요.


 같이 찾아봐요.

 그 진심을 제대로 담는 방법." 





 페리클레스의 심장이

 지난번처럼 쿵 떨어지더니

 또 어디론가 굴러갔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창밖으로 해가

살짝 일그러진 채 기울고 있다. 



노을빛이 굴러떨어진

페리클레스의 심장을 스쳤다. 


 따뜻한데,

뼛속 깊은 곳까지 물들어

다시 돌아가려는 생각조차

사라질 것만 같은 색이었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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