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10장

군침 (3)






북토크 행사장 — 저녁

건물 앞에는

작은 줄이 생겨 있었다.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
핸드폰 화면으로

예약 메일을 확인하는 사람들.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조용히 같은 방향으로 서 있다.

아스파시아는 그 줄을 지나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페리클레스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사냥터를 보러 온 것이다.


행사장은 생각보다 컸다.

200석.

거의 다 차 있었다.

늦게 들어온 사람 몇 명이
벽 쪽에 서 있었다.
누군가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공기가 묘하게 조용했다.

떠들지 않는다.
누군가 말을 시작하기 전의
기다림 같은 정적.

아스파시아는

뒤쪽 구석에 섰다.



무대를 봤다.



페리클레스는

이미 거기 있었다.


검은 셔츠.
재킷은 입지 않았다.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조명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연출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서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모여 있었다.

마치 방 안의 중심이
거기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페리클레스는

말을 서두르지 않았다.

잠깐 청중을 한 번 둘러봤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순한 문장이었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들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은
노트를 펼쳤다.

누군가는 이미

눈을 붉히고 있었다.


아스파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듣게 한다.





페리클레스는
책을 천천히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가
마이크에 살짝 들어갔다.



그는 편안하게 말했다.

"사람은 보통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잠깐 멈춘다.
침묵.


연출처럼 보이지 않는
생각하는 사람의 침묵.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디선가 배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숨을 들이쉬었다.

앞줄에서
한 여자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

다른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메모를 하고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같은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급하지 않았다.
설득하려는 톤도 아니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의 속도였다.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말.


아스파시아는

그를 보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을 봤다.



오른쪽 구역.
먼저 반응한다.

여성.
30대.
혼자 온 사람들.


그 다음 중앙.


마지막으로 왼쪽.


반응이 퍼진다.
마치 물결처럼.






아스파시아의 손이
천천히 스마트폰을 꺼냈다.

메모장을 열었다.
그리고 짧게 썼다.


반응 

구조 

존재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무대 위의 남자를 봤다.

페리클레스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과장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간 전체가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스파시아는 그 순간
이 남자의 위치를 이해했다.

저건 빛이다.

사람들이
그 빛을 향해 돌아서고 있었다.











페리클레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작은 숨소리가 났다.

앞줄.
한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눈물이 이미 흐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노트에 집중하고 있다.
펜이 급하게 움직였다.


옆자리에서는
누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 반응이 조용히 옆으로 번졌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아스파시아는

그 움직임을 지켜본다.



누군가는 눈물을 닦았다.
누군가는 팔짱을 풀었다.

누군가는 아까까지 보던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공기가 흐르는 방향이
정해진 것처럼.






페리클레스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말하고 있었다.

급하지 않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냥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듣는다.





어떤 여자가
노트를 덮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표정은
결심을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스파시아는 그걸 봤다.





앞줄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맞아요.”

그 한 마디가 떨어지자
몇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은
순식간에 뒤로 퍼졌다.




아스파시아의 시선이
천천히 이동했다.

오른쪽.
먼저 반응한다.

중앙.
조금 늦게 따라온다.

왼쪽.
마지막으로 고개를 든다.




그녀는 그 장면을
조용히 머릿속에 기록했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한 사람의 말 때문에.
한 사람의 확신 때문에.


페리클레스는
무대 중앙에 그대로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간 전체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스파시아는
그 풍경을 잠깐 바라봤다.



사람들이 그에게
자기 신뢰를 쏟아붓고 있었다.











반응의 순서.
멈추는 타이밍.
감정이 번지는 속도.



그리고 그 중심.
페리클레스.



저 남자는
사람을 설득하려 하진 않는다.

그냥 자기 확신을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 삶을 갖다 놓는다.




그 순간

아스파시아의 시야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조명이 무대 위에서

천천히 번졌다.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 사람의 말 때문에.




그녀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아스파시아는

숨을 들이쉬었다.




이상했다.
잠깐 어지러웠다.
취한 것처럼.


그녀가 취한 것은,

술도 카페인도  아니었다.

힘이었다.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자기 결정을 맡기는 순간.

그 장면이 극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아스파시아의 혀 밑에서 

군침이 고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는 깨달았다.
이 느낌은 배고픔이 아니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감각.


측량.



사냥감의 크기를
처음 제대로 인식했을 때
올라오는 것.





아스파시아의 시선이
다시 무대로 돌아갔다.



페리클레스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말하고 있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느린 속도.




그녀는 반복되는 생각을

이제 확신한다.

저건
채널이다.

저건
집단이다.

저건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의 중심에
저 남자가 서 있다.




아스파시아는

지금 발견한,

그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다른 감각이 따라 올라왔다.



차갑다.
경고에 가까운 감각.


저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저건
나를 먹을 수도 있다.







아스파시아의 눈이
조금 더 가늘어졌다.


이건
단순한 인플루언서가 아니다.
이건 풍요와 흐름 그 자체다.

사람들이
자기 신뢰를 쏟아붓고 있는 자리.



그리고 이렇게 모인 풍요는
언제나 권력이 된다.


아스파시아는
조용히 생각했다.


사냥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역시 포식자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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