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7장 

낙하 전의 정적 (1)



 2개월 후

아스파시아의 작업실 - 오후3시




 창문으로 늦겨울의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온다.

먼지가 빛 속에서 느리게 떠다닌다.


 아스파시아는 

모니터 세 대 앞에 앉아 있다. 



 왼쪽 화면,

프로젝트 통계.


활성 사용자: 847명 (+547) 

일 평균 접속: 23분 (+8분) 

콘텐츠 조회율: 89% (+11%) 

완료율: 67% (+23%)


 그녀는 스크롤을 내린다.



사용자 피드백 (최근 7일)


"이거 진짜 효과 있어요"

"처음으로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겠어요"

"생각보다 깊네요. 계속 하고 싶어요"






 가운데 화면.


 페리클레스의

유튜브 채널이 떠 있다.




[신규 업로드] 


"불안할 때 하는 3가지" 

조회수: 234,891

좋아요: 18,203 게시: 3시간 전





 썸네일 속 페리클레스는

 차분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고 있다.

 댓글창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 영상 보고 울었어요"

"진짜 제 이야기 같아서..."

"페리클레스님 덕분에 오늘도 버팁니다" 




 오른쪽 화면,

수익 대시보드.


이번 달 수익: ₩4,287,000

전월 대비: +127%

프리미엄 전환율: 8.3% (+2.1%) 

해지율: 2.1% (-1.3%)

 




아스파시아는 커피잔을 든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미지근한 온도. 

마시기 딱 좋다.

 그녀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순조롭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데이터는 정직하다.



813명.



그들은 매일 23분씩 

SALON에 접속한다.

매일.




 그녀는

피젯 스피너를 돌린다.


회전.

회전.

회전.




 '2개월.' 




 카페에서

처음 만난 게 언제였지.

정원의 5층. 




 "당신이 예쁠까 생각했습니다."




아스파시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바보 같은 소리.' 




 그녀는 다시

왼쪽 화면을 본다.

 사용자 코멘트를 스크롤한다.




 "드디어 제 욕망을 마주했어요."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어요."

"무섭지만 해볼게요."




 '좋아.'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감동만 받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동하고 있다.


 이게 페리클레스와의 차이다.


 그는 감동을 주고,

나는 방향을 준다.


 그는 희망을 주고,

나는 지도를 준다.



감동만으론 아무것도 안 바뀌어.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이름이 뜬다.




[페리클레스]





 아스파시아는 전화를 받는다. 





 "네."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럽다.






 "아스파시아! 지금 뭐해요?" 






 페리클레스의 목소리는 밝다. 

약간 들뜬 것 같다.





 "작업 중이에요."





 "아, 맞다.

 지금 3시니까. 죄송해요."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아, 그게...

저녁 뭐 먹고 싶어요?"


 아스파시아는

 화면을 보며 대답한다.




 "음..."



 오른쪽 화면의 숫자가 올라간다. 




 ₩4,287,000 → ₩4,289,000




 실시간으로 늘고 있다.




 "파스타?"




 "좋아요! 그럼 그 전에...

 제 강연 보러 올 거죠?"





 "...강연이요?"





"아, 말 안 했나?

오늘 6시에 강연 있어요. 

 짧아요. 30분 정도.

보러 와요. 같이 가요."



 아스파시아는

캘린더를 확인한다.

비어 있다.




 "...좋아요."



 "진짜요? 와, 고마워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4시 30분에 픽업할게요."



 "네." 





 "저녁은 그 이탈리안 레스토랑 갈까요?

 지난번에 가본..."






 "좋아요." 





 "오케이! 

그럼 4시 반에 봬요!"





"네."




 전화가 끊어진다.


 아스파시아는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 루틴도 나쁘지 않네."



 그녀는 다시 화면을 본다.

 숫자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4,291,000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 

 돌아가는 숫자.

 들어오는 데이터. 


 모든 게 돌아가고 있다.

순조롭게.   







강연장 앞 - 오후 5시 45분




 작은 북카페 겸 문화공간.

2층 건물. 

입구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페리클레스와 함께하는

"진심을 설계하는 법"


1.23(토) 18:00





 페리클레스의 차가 도착한다.

 아스파시아가 조수석에서 내린다. 


 검은 코트에 아이보리 터틀넥.

머리는 뒤로 묶여 있다.

 

페리클레스가

운전석에서 내린다.

 그는 약간 긴장한 표정이다.



 "시간 맞춰 왔죠?"



 "네. 괜찮아요."



 "저기, 들어가기 전에..." 




 페리클레스가 멈춘다.




 "...네?" 




 "제가 오늘 말하는 거 중에

 어색한 부분 있으면 

 나중에 솔직하게 말해줘요."



 아스파시아는 그를 본다.




 "왜요?

이미 당신은 프로예요." 




 "그냥... 당신 앞에서는

잘 보이고 싶어서요." 




 그의 목소리는 진지하다.



 아스파시아는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미 잘 보여요."




 페리클레스는 눈을 크게 뜬다.




 "진짜요?"



"네." 



 거짓말은 아니다. 

 그는 정말 잘 보인다. 

 구독자 100만이 넘는 사람답게.

 조회수 수십만을 찍는 사람답게.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스파시아는 알고 있다.


 그는 여전히 불안하다.

 여전히 확인받고 싶어한다.

 여전히...



"고마워요."



 페리클레스가 미소 짓는다.



"그럼 들어가요."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스파시아는

저항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강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강연장 - 오후 6시





 사람들이 앉아 있다.

 30명 정도. 


 아스파시아는

뒤쪽 자리에 앉는다.


페리클레스는

무대 위로 올라간다.

 마이크를 잡는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안정적이다.

 카메라 앞에서와 똑같다. 

 아스파시아는 그를 본다.



'...익숙하네.' 



 그는 이제 무대가 편한 사람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





 "오늘은 진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청중이 집중한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중 몇 개나 진심일까요?"




 페리클레스는 잠시 멈춘다.




 "저는 요즘

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스파시아의 눈이

살짝 커진다.




 '...뭐?' 






 "그 사람은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진심은 설계될 수 없지만,

 진심을 전달하는 방식은

설계될 수 있다'고요."




 청중이 웅성인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진심은

언제나 있었다는 것을요."




 그는 아스파시아를 본다. 

 뒤쪽 자리.

 어두운 조명 속.


하지만 그는 그녀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계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스파시아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 사람.'





 그는 지금 무대 위에서 

30명 앞에서 

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누군가 특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페리클레스는 계속 말한다. 




 "진심과 설계.

이 두 가지가 만나면,

우리는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청중이 박수를 친다.


 아스파시아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본다.




 무대 위의 페리클레스.

 빛을 받는 페리클레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페리클레스.





 2개월 전의 그가 아니다.

 더 이상 혼자서는

 선을 못 넘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그는 스스로 무대에 서서

 수백, 수천, 수만 명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키운 건가,

 아니면 원래 저랬던 건가.'





아스파시아는 알 수 없다.





 30분이 지나가고, 

 강연이 끝난다.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페리클레스가

무대에서 내려온다.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온다. 

 사진 요청. 사인 요청.




 아스파시아는 뒤에서 본다.




'...인기 많네.'




 30분쯤 지난 후,

사람들이 흩어진다.






 페리클레스가 그녀에게 온다.




"어땠어요?"




 "...좋았어요."




"진짜요?"






 "네. 사람들 반응도 좋았고." 




 페리클레스는 미소 짓는다. 




 "다행이다.

당신이 좋다고 하니까

진짜 안심돼요."




 그는 그녀를 본다.




 "...예뻐요. 오늘."



 아스파시아는 웃는다. 




 "매일 예쁜데요?" 




 "맞아요.

근데 오늘 특히."





 그는 진심이다. 

 아스파시아는 알 수 있다.

그의 눈빛으로. 묘한 기분이다.





10년 전,

수정언니는 말했다. 





 "지적인 매력은 안 먹혀." 




 하지만 이 사람은

 그녀의 지적인 매력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가요. 배고프죠?"





"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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