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2장 Part 3

나는 아직 집이 없으니까 (3)



분할 화면 – 48시간 후



[좌측 – 아스파시아의 작업실 (물, ☵ 010)]


 아스파시아는

페리클레스의 새 영상을 본다.





[진심은 설계될 수 있는가]


 업로드: 2일 전

 조회수: 287,439회

 댓글: 6,892개


 그녀는 댓글창을 스크롤한다.





"페리클레스님 이번 영상...

진짜 너무 깊어요."



 "설계된 진심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아요."



"이 사람은 정말 다르다.

진심이 느껴져."






 아스파시아는

스크롤을 멈춘다.



 "진심이 느껴진다..." 






 그녀는 피젯 스피너를 돌린다. 

 회전.

 회전.



"느껴지는 건 진심이 아니야.

 감각이지." 





 그녀는 메모장을 열었다. 





[아스파시아의 전략 노트]



물의 법칙:

틈새를 찾는다

저항하지 않는다

스며든다

채운다





페리클레스의 틈새:



 1. 그는 설계를 인정했다

2. 하지만 여전히 '진심'에 집착한다

3. 이 모순이 그의 약점이다

4. 뇌가 있는지 모르겠다




침투 지점:

진심과 설계의 경계를 흐린다

그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아스파시아는 메모장을 닫고

 페리클레스의 영상 댓글창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댓글을 쓰기 시작한다. 






ENERGY CODE 010 (☵ 감)

물의 첫 움직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막힘이 없이. 형태 없이.







[Aspasia의 댓글]


"진심은 설계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을 전달하는 방식은 설계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죠.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진심일까요,

아니면 그 전달 방식일까요?


당신의 영상을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당신의 진심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설계한 언어의 완성도일까요?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합니다. :)"





 작성 완료. 





 아스파시아는

마우스를 댓글 작성란 위에 올린다.

 3초간 멈춘다.


 그리고 클릭한다. 





[댓글 게시됨]



 그녀는 창문 밖을 바라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틈새로 스며든다.








[우측 – 페리클레스의 스튜디오 (불, ☲ 101)]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영상 댓글을 보고 있다.

 숫자가 계속 올라간다.


 6,892개.

 6,901개.

 6,915개.




 그는 스크롤하다

한 댓글에서 멈춘다.



Aspasia.

그녀다. 

 그는 댓글을 읽는다.

 한 번. 두 번.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진심일까요,

아니면 그 전달 방식일까요?" 






 페리클레스는

마우스에서 손을 뗀다. 


 잠깐 머리가 어질하며

현기증이 일었다.


땅이 흔들려

지축이 바뀐 것처럼.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심장이 철렁,

파도치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댓글로 돌아갔다.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합니다. :)" 





 저 이모지. 저 여유.

 페리클레스는 입술을 깨문다.




 "싫은데."




 그는 중얼거린다.





 "왜 저 말이 자꾸 맴도는 거지?"





 페리클레스는

Aspasia의 프로필을 클릭한다.



 잠깐 망설이다.

 클릭.





[Aspasia 채널]

 구독자: 681명 


페리클레스는

채널의 구독자 수를 보고

피식 웃고 안도한다.


유령의 정체가 밝혀진 듯이.






 최근 업로드: 

[운용의 기술: 에너지를 설계하는 법]


 업로드: 1일 전

 조회수: 362회



 페리클레스는 아무렇지 않게

그 영상으로 커서를 가져간다. 


 마우스 커서는

썸네일 위에서 멈췄다. 



유령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보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보지 말아야 하는데."





그는 알고 있다.

 이 영상을 보는 순간,

 뭔가 달라질 거라는 걸. 



지금이 이틀 전,

그가 예감한 순간이라는 걸.






 "보지 마."



 그의 손가락이 떨린다.




 "보지 말라고."



 클릭.







[아스파시아의 영상]


검은 배경. 

 아니, 흐릿하게 물결치는 배경.

심연에서 일렁이는 파도같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에너지를 설계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에너지가 흐를 수 있는

경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물은 스스로 흐르지만,

물길은 설계됩니다.





당신의 진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 도달하려면,

경로가 필요합니다.

그 경로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운용입니다.


당신은 진심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이 흐를 길은

만들 수 있습니다."






 영상이 끝난다.

 페리클레스는 화면을 바라본다. 

 



 "...젠장."




 그는 노트북을 닫는다.



탁.





 그는 일어나 창밖을 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물길을 만든다고?"




 그는 비웃는다. 




 "뭐라는 거야. 

별거 아니었네.


괜히 나한테 기생해서

어그로 끌어보려고.

구독자도 없고."





"요새 저런 아무말 하면서

척하는 인간들 많아. 진심도 아닌 ㄱ..." 



 페리클레스는 멈칫한다. 

그녀가 심어둔 트리거가 발동했다. 


 페리클레스는 칠판 앞으로 간다.

마커를 집어 든다.






☲ 불의 첫 점화.

 내부에서 폭발하는 열.

 막을 수 없는 확산.

 순간적인 밝음.





 페리클레스는

칠판에 크게 쓴다.




그녀가 새긴

내면의 흔적을 덮는 것처럼,

아주 크게.


보이지 않게, 더 자신을

눈부시게 만들려는 것처럼.







물길을 설계하는 자 VS 물 자체


 그리고 그 아래:

"나는 어느 쪽인가?"




 그는 마커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선다. 




 "아니지." 



 그는 다시 쓴다.






"나는 불이다."


"물길 따위 필요 없어.

"불은 스스로 타오른다."




 페리클레스는 마커를 던진다.

 그리고 카메라를 켠다.




☲ 불은 타오른다.





    [페리클레스 긴급 라이브 공지]

"긴급 라이브: 나는 누구의 물길도 따르지 않는다" 

오늘 밤 10시








공지가 올라간다.

 알림이 터진다.

  

아스파시아의 화면에도

알림이 뜬다.


[페리클레스가 라이브 방송을 예고했습니다]



그녀는 제목을 본다.



"나는 누구의 물길도 따르지 않는다"



아스파시아는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는 허리를 우아하게 펴고,

숨의 움직임에

차를 마시는 동작을 올린다.



차를 마시고,

입안에 머금는다.


숨을 내쉬고, 

아래턱을 이완하며 차를 삼킨다. 


차가 내려가는

몸 안의 길을 느끼며 

호흡을 한번 더 가다듬으며

천천히 이완한다.





척추뼈 하나하나, 

뼈의 샹들리에를 드리운 듯한

허리와 등의 유연한 곡선이 느껴진다. 




자신의 척추가

가장 아름답게 느껴진 순간, 

그녀는 미소지으며 생각했다.



중요한 생각은,

가장 고요한 수면 위에 띄워야 해. 

그래야 현실에 제대로 가 닿을 수 있어. 

나는 아직 이곳에 집이 없으니까.






"불이 저항하고 있어." 




그녀는 창밖의 비를 바라본다.


불의 기세는 줄어들고,

물은 땅 아래로 스며든다.

저항할수록 더 깊이.







[페리클레스의 스튜디오]


페리클레스는

라이브 준비를 한다.

조명. 카메라 각도.

마이크 테스트. 





그의 눈이 타오른다. 




"오늘 밤,

내가 누군지 보여줄 거야." 




그는 Aspasia의 댓글을

다시 본다.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합니다. :)" 




"흐릿하다고?" 




페리클레스는 비웃는다. 




"내 경계는 명확해." 




별것도 아닌게.

어그로 주제에.




불은 어둠을 밝힌다.




유령이 실체가 되었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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