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앞에 나타난 문.
그는 그 문 앞에서
처음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그동안 그는 선택했고,
관통했고, 회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문 앞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오래도록 회피해 온 구조’를 감지했다.
문 위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이제 말과 함께 통과해야 한다.
그는 문에 손을 얹었다.
문은 밀리지도, 열리지도 않았다.
이건 물리적으로 열리는 문이 아니라
의식의 문,
말 이전의 의식의 흐름에
반응하는 문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말을 가장
두려워해서 꺼내지 못했지?”
“어떤 말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를 무너뜨렸지?”
“그 말은,
언제부터 내 안에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동안의 여정, 잃어버린 부모님,
남겨진 지구, 죽은 대원들...
모든 것이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했다.
그리고 그는 작게,
속삭이듯 말을 뱉었다.
“나는 그들을 버렸다.”
그 순간, 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는 실금들이
문 전체에 퍼져나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오딧세우스는 계속했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나 자신만을 구했다."
문은 이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열리지 않았다.
키르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은 진실이지만,
그 밑에 있는 울림을 찾아요.
당신의 말이 그 울림에 닿게 해요.”
그는 눈을 감았다.
의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생각이 아니라 파동으로 자신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여지껏 말로 태어나지 못한
진실 하나를 느꼈다.
“나는… 혼자다.”
그 말이 문에 닿자,
문 전체가 진동했다.
마치 그 자신이 하나의 악기였고,
그 말은 자신을
처음으로 울리는 음이었고,
그 파동이 자신의 세계를 열었다는 듯.
오딧세우스는
자신의 진실을 토해내듯,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혼자였다."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 빛도, 공기도,
이름도 없이 피어 있는
하나의 생명체.
한 송이,
압도적인 존재감의
거대한 꽃.
그는 이해했다.
그 꽃은 그가 자신 안에 끝까지 숨겨놓았던
삶의 박동, 생명의 진실인 리듬이었다.
그 리듬은 이제
말이 될 준비가 된 상태였다.
오딧세우스는 문을 통과한 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사라진 듯했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는 고백이 끝난 후의 고요와 함께,
아직 무너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자신을 느꼈다.
사라진 외피 뒤에 남은 건,
더 이상 과거에 갇혀 있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의 ‘존재 그 자체’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하나의 언덕이 나타나 있었다.
그 언덕 위에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신조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그를 위한’ 무언가.
이제 그는,
내면의 어둠을 지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리듬의 진원지로 향한다.
INTO THE 3RD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