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10장

군침 (1)




불이 꺼져 있었다.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한 줄씩 들어왔다.

가느다란 빛.
먼지가 그 안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아스파시아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딘가.

잠을 잔 것 같지도 않았다.

목 안쪽이 말라 있었다.
관자놀이가 묵직했고,
등이 뻣뻣했다.



어젯밤 벗어둔 귀걸이가
탁자 위에 있었다.
재킷은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보지 않았다.

손이 폰 화면을 열었다.
반사적으로.
알림 세 개.

잠깐.

이름은 보지 않았다.
내용도 읽지 않았다.

화면이 꺼졌다.

아스파시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욕실.
불은 켜지 않았다.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은 어두웠다.
윤곽만 보였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찬물.

손을 담갔다가 얼굴에 끼얹었다.

한 번.
두 번.




물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처음으로 어젯밤을 복기했다.
어제 내가 한 말들.


순서대로 떠올렸다.




“저는 당신 철학의 증명서예요?”


“사랑이 아니라 확보.”


“저는 누가 제 목에
끈을 거는 순간을 잘 알아요.”


세수를 하다 말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서서

그녀는 자신의 전체 문장을

다시 훑는다.



그녀가 사용한 단어에는

불필요한 여지를 주는 감정이 없었다.


정확한 문장.
진술처럼.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


아스파시아는 불을 켰다.
거울 속 얼굴이 드러났다.



눈 밑이 약간 어두웠다.

입술이 어제보다 

조금 창백했다.

그게 전부였다.
무너진 얼굴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피곤한 얼굴.




그녀는

거울을 잠깐 더 봤다.

그리고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는 책상으로 갔다.

노트와 펜을 꺼내
망설이지 않고 쓴다.


잃은 것:

투자했던 프로젝트
관계 (페리클레스)
시간 (5년)


마지막 숫자를 보고
그녀는 펜을 잡은 손끝에 힘을 준다.

 

그리고 다시.



잃지 않은 것:
프로그램 사용자 872명
프로젝트 데이터
관찰한 것들


잠깐 더 생각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적었다.



남은 것:
미답변 문의 43
환불 요청 18


펜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관리할 것:
이탈률
남아 있는 반응
외부 채널 흐름




아스파시아는 노트를 덮었다.

책상 위에는
프로젝트 로고가 찍힌 

파일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마지막 항목이

머리속에 남는다.


외부 채널 흐름.



폰을 다시 들었다.
유튜브를 열었다.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



페리클레스.

구독자: 1,200,000 



그 숫자 위에서

시선이 한참 머물렀다. 

한 사람의 숫자치고는 컸다.





그녀는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렸다.
빛이 방 안으로 쏟아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잃은 건 자리다.

 
잘못된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어.





이번에는
자리부터 다시 잡아야 했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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