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3장 

헤타이라의 정원 (last)






 페리클레스는

할 말을 잃은 채 멋쩍게 웃었다. 





 아스파시아는 갑자기,

뭔가 말하고 싶어졌다. 






조금 전의 피로감에 대한

상대적 반동,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 






 "뭐 보세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에게 다가가자

 그의 시선에서

2층이 눈에 들어왔다,




 체스판,

아까 그가 잠시 앉았던 자리. 





 "아까 페리클레스님이 앉았던 자리네요."






 그리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뭐 생각하셨어요?"






"...아니, 그냥요."





 "아, 궁금한데."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말씀해 주세요." 








 "...아닙니다."







 "왜요?"






"...부끄럽습니다." 







 Aspasia는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감정이 실린 웃음이었다.





 "부끄럽다고요?" 






 그녀는 웃으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페리클레스님, 당신 진짜..." 




 "뭡니까?"





 "귀여우시네요."






 페리클레스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귀엽다고요?"





"네." 






 Aspasia가 예쁘게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망했네.





 페리클레스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이상했다.





 '귀엽다고?' 





 그는 30대 성인 남성이었다. 

구독자 12만 명의 크리에이터였다. 






 '귀엽다는 소리를

들을 나이는 지났는데...' 






 근데 왜 기분이 나쁘지 않지? 

 아니, 오히려...





'좋은데?'







 페리클레스는

자기 자신이 낯설었다. 









 아스파시아는 생각했다.

수확이 적다.


 동선, 대화의 흐름,

심어야 했던 트리거. 





다 어디갔지.

 왜 기억이 안나지. 



엎고 싶다.



 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귀여워서 반했다 뭐 그런 것도 아니다.


난 다만 디올 립스틱으로 덮인

 괄약근 하나가 풀린 것 뿐이다. 

 그리고 고삐를 놓친 시간과 기회만큼, 

그만큼의 손실을 본 거다. 






괄약근 

아 괄약근...


 아니...뇌가 없는 건가. 




 아스파시아는

 오늘의 명세서를 예상하고 나서,

언제 힘이 넘쳤냐는 듯

관광 책자를 힘없이 들어올렸다.


원래 보아야 할 전략기획서는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최소 예의를 지키려면 두 시간....

곧 끝난다.





 "그나저나." 





 Aspasia가 위를 가리켰다. 





 "5층 올라가 볼래요?"





 페리클레스는 고개를 들었다.





 옥상 정원.







 "거기는...어떤 곳이죠?" 






 "음..."






 Aspasia는 잠시 생각했다.






 "5층은요,

영향력의 자리예요."





 "영향력이요?"





"네."






4층은 '보이는 자리'고,

 5층은 '영향을 주는 자리'예요."






그녀는 미소 지었다. 




 "난 전체를 보지만,

상대는 날 못보거든요."





 페리클레스는 계단을 올랐다.




 Aspasia가

옆에서 같이 올라왔다.





'어? 이번엔 같이 오네.' 




 3층에서 4층 올라올 땐

 그녀가 뒤에서 따라왔었다.

 근데 이번엔 나란히 걷고 있었다. 






 '뭐가 달라진 거지?'




 페리클레스는 슬쩍 Aspasia를 봤다. 


 '좀 더... 나 좋아해..졌나?' 







 그녀는 앞을 보고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고,

4층의 기둥마냥 몇 번이고 덧대어진, 

이천만원짜리 코 라인만 보였다.




물론 그는 그 코의 가격은 몰랐다.  








  5층. 옥상 정원.

 해가 저물고 있었다.



 문을 열자, 

 석양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와..." 



 페리클레스는 감탄했다.




 넓은 원형 공간.


 가장자리를 따라

화분 8개가 놓여 있었다.





 각 화분에는 작은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중앙에는 벤치 하나.

 그리고-



 "도시가 다 보이네요." 




 정원 너머로

 서촌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기와지붕들.

좁은 골목들.

저 멀리 북악산.




 "예쁘죠?"



 Aspasia가 옆에 섰다.




 "저는 이 자리가

제일 좋아요."





 "왜요?" 



 "여기선 모든 게

작아 보이니까요."




 그녀는 도시를 가리켰다.



 "저 아래 사람들,

저 건물들, 저 차들... 

 다 멀리서 보면 작아요.


문제들도 작아 보이고."






 페리클레스는

그녀를 봤다.




 "...의외네요."




 "뭐가요?"




 "당신 같은 사람이

'작아 보인다'는 걸 좋아한다니."





 Aspasia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같은 사람이요?"






 "네."





 페리클레스가 말했다.





"당신은...모든 걸 

정확히 보는 사람 같은데.


 작게 보이는 걸 좋아한다니

 이상하네요." 







 Aspasia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페리클레스님." 





 "네."





"저는요..."




 그녀는 벤치에 앉았다. 



"아래서는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제 눈에 담을 수 있어요.

제가 원하는 것을요."







 그녀의 눈이 향한 곳에, 

무언가가 어렴풋이 반짝였다.

무엇이 반사되는지는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페리클레스는

아스파시아가 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Aspasia가 웃었다. 






 "무엇이 가지고 싶은 건가요?"






 "...저요?"





"네." 




 그녀가 그를 봤다. 




 "가지고 싶다면

 페리클레스님이 줄 수 있는 거려나,"






침묵이 흘렀다. 




 석양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페리클레스는

그녀에게 말했다.




 "운용, 고마웠어요."






 아스파시아의 눈이

잠깐 빠르게 깜박였다. 




속눈썹의 실루엣과 노을이 어우러져

그림자가 떨어진 단풍처럼

얼굴에 흩날렸다.







"참." 






 Aspasia가 갑자기 말했다.







 "2층에서 뭐 생각하셨어요?"





 페리클레스는 깜짝 놀랐다.





 "...아, 그거요?"





"네. 궁금해요." 






 그녀는 물었다.







 "부끄러우시다고 하셨는데,

대체 뭘 생각하신 거예요?"






 페리클레스는 얼굴이 빨개졌다. 







 "...정말 알고 싶으세요?"







 "네."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안 웃으시겠다고."




 Aspasia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웃을게요."





 페리클레스는 심호흡했다. 





 "저는..." 






 "네."






 "...당신이 예쁠까 생각했습니다."




 침묵.

 3초.

 5초.





 Aspasia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푸핫-!"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페리클레스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아, 진짜."





 "미안해요,

진짜 미안해요!" 






 Aspasia는 웃으면서도

미안하다고 연신 말했다.






 "근데 진짜 너무 솔직하셔서..."





 "...두 번 다시 솔직하지 않겠습니다." 






 "아니에요, 좋아요!"






 그녀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진짜 귀여우세요. 

진심이에요."







 페리클레스는

5층 벤치에 깊이 앉았다. 






 '아, 망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부끄럽긴 한데.






 '기분이 나쁘진 않네?' 









  Aspasia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페리클레스는 오늘 처음 봤다. 

 그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






 '...예쁘네.' 




 이 생각이 든 순간,

 페리클레스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진짜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 속에서 웃음은

 관계 조정을 위한 장치,

 긴장 해소를 위한 신체 작용일 뿐,

본인에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근데요." 







 Aspasia가 웃음을 멈추고

남은 동전을 긁어모으는 느낌으로

말을 골랐다.




 다음 후크가

 무엇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답은 안 해주시나요?" 






 "...무슨 답이요?" 





 "제가 예쁜지 아닌지요." 






 페리클레스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심장은 다시 어디론가 굴러갔다. 





 "...그건..."






 "농담이에요." 





 Aspasia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대답 안 하셔도 돼요." 





 분명히 웃음은, 

긴장 해소 장치 이상은 아니다. 






 "대신..."





'회수하자. 뭐 걸지.' 







 그 때 그녀의 속눈썹이

잠깐 떨렸다.






 마치, 눈꺼풀에

가만히 손가락이 와 닿는 듯한 느낌. 






 그녀는 10년 전 룸에서

수정언니와 짧은 만남 이후, 

내내 이어지는 성형과 쇼핑,

시술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적인 매력은 안 먹혀.'





 그 한마디가

 아스파시아의 카드 명세서를 

 십년째 채우고 있었다.







 잠시 눈꺼풀에 힘이 풀리자

무거운 속눈썹이 

 공기를 부드럽게 가르며

뺨에 얹히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에

다섯 가닥씩 빠지는

이 속눈썹.




 뺨의 미세한 감각을 트리거로 

그녀 안의 저울이 차르르 

금속 소리를 내며 일어선다.






 아스파시아는 그 소리에 

머리가 맑아졌다.



 그녀에게

 예쁘다 말하는 남자들은

언제나 있었다.





 페리클레스의 무게는?

핸드메이드 코트 대신

속눈썹 연장을 선택한 결과값은? 





 석양이 기울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 저울처럼.



 하나, 둘, 성과 없는 나날들이

빠진 속눈썹처럼

저울 위에 하늘하늘 쌓이고

저울이 그녀에게 ROI 추산서를 내민다. 





 내 속눈썹.





 오늘은 망했다. 





 아무래도 아울렛에 안 가서 그런 것 같다.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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