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3장 

헤타이라의 정원 (2)



 2층. 벤치 정원.


 흰색 대리석 벤치 6개가

원을 그리며 놓여 있었다.


 각 벤치는 정확히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무의식적으로

벤치 하나에 앉았다.



 '아, 앉지 말걸.'


 앉는 순간, 후회했다.

 몸이 굳었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나는 수백 명 앞에서 라이브도 했고, 

 영상도 수십 개 찍었어. 

이런 자리 하나쯤...'





 하지만 손은 떨렸다. 

 벤치 옆 작은 테이블 위에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말들이 중간쯤 놓여 있었다.

 누가 두다 만 것 같았다. 

 흑이 우세해 보였다.

 백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누가 둔 거지?'



 페리클레스는 무심코 

백의 기사를 집었다. 

 움직여보려다가. 멈췄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는 말을 도로 놓았다.

 시선을 들었다. 


3층 테라스. 거기,

유리 테이블 옆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실루엣만 보였다. 



 석양 역광 때문에

얼굴은 잘 안 보였다.


 하지만 그 윤곽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Aspasia.





 그녀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천천히, 우아하게.


 그리고

 그녀는 이쪽을 보고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숨을 들이켰다. 


 '...보고 있네.'


 그는 일어나야 할지,

 계속 앉아 있어야 할지 몰랐다. 


 인사를 해야 하나?

손을 흔들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올라가야 하나? 




 '너무 급하면 안 돼.

진정해.'




 그는 다시 앉았다. 




 '여기서 좀 더 생각을 정리하자.' 




 하지만 생각은 

당연히 정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질문 리스트는?





 '...집에 두고 왔어.' 





 아니, 애초에

그 리스트를 다 지웠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하자'고

다짐했었는데. 




 '근데 뭘 어떻게 자연스럽게...'



 페리클레스는

벤치 등받이에 기댔다.

 차가운 대리석이 등을 눌렀다. 

등의 감각에 잠시 정신이 돌아왔다. 





 '아, 여기는...

머무르는 곳이구나.' 




 이 층은 올라가기 전에

잠시 쉬는 곳이었다.


 준비하는 곳.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는 곳. 




 하지만 그는 계속

여기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위에서,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페리클레스는 천천히 일어났다.

 벤치 정원을 가로질러 중앙 계단 앞에 섰다. 5단.



 그는 첫 번째 계단에 발을 올렸다. 





 두 번째. 

 '그녀 영상에서 본 목소리... 

 실제로는 어떨까.' 




 세 번째.

 '...예쁠까?'




 네 번째. 

 '아니, 이쁜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섯 번째.












3층 테라스. 


 분홍빛 대리석 바닥이

 오후의 햇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났다.

 바닥 한가운데에는

가느다란 균열이 있었다. 





 유리 테이블 앞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Aspasia.



 짙은 회색 터틀넥.

옅은 회색 코트.

 머리는 하나로 뒤로 묶여 있었다.


 손에는 작은 도자기 찻잔.

 그녀는 차를 마시고 있다. 



 천천히, 여유롭게.


 페리클레스가 올라오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테라스에 완전히 올라서자. 

 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시선이 마주쳤다.





 "잘 찾아오셨네요."





 영상에서 들은 그 목소리.


 Aspasia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차가운 것도, 따뜻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으니 달랐다. 



 공기를 통해

직접 전해지는 음성은

 영상을 통해 들은 것과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찾기 쉬웠습니다."



 '아 나 뭔 개소리야'





 "2층에서 좀 머무셨죠?"



 페리클레스는 멈칫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보였으니까요."





 그녀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이곳은

제가 자주오는 카페예요.


사람들은 보통 2층에서 멈춰요.


 올라오기 전에 

자신을 가다듬으려고 하죠.

 당신도 그랬고요." 



 페리클레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 몇 분 만에,

 그는 완전히 읽혔다. 





 Aspasia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테이블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그녀는 그가 그녀의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페리클레스는 앉았다. 




 페리클레스가 집었던 백의 기사가 

금을 밟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흑의 여왕과

일직선으로 만나는 곳에서.










테이블 위에는

찻잔 하나가 더 놓여 있었다. 

그 잔은 비어 있었다. 



 Aspasia가 작은 다관을 들어 

그의 잔에 차를 따랐다.

 연한 노란빛 액체가 잔을 채웠다. 





 "만나서 반가워요."

 페리클레스는 잔을 들었다.


 따뜻했다.

 한 모금 마셨다.





 "...무슨 차입니까?" 






 "이 곳의 시그니처 티 중 하나예요."





 "향이... 독특하네요."




 그녀는 다시 자신의 잔을 들었다.

향을 음미하는 그녀의

속눈썹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천천히 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속눈썹이 펼쳐지며

그림자가 오후의 햇살에 번져 사라지고, 

대신 그녀의 눈동자가

그의 앞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만나보고 싶었어요.

페리클레스님" 






 페리클레스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이 차는,

이 층에서 마시기 딱 좋아요.

부드러운 코히런스 조정과

각성이 동시 일어나니,

 이 층을 견딜 수 있게 해 주거든요."






 그녀는 미소 지었다.





 "뭐, 이정도 양 가지고

어림도 없을진 모르지만."




 3층.


 페리클레스는

바닥의 균열을 내려다봤다.

 가느다란 금.


석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 금...

원래부터 있던 건가요?"






 "네. 이 카페를 만들 때부터요." 



 "왜 그대로 두었을까요.

이렇게 눈에 띄는데..."




 "흔들리게 하려고."




 페리클레스는 시선을

그녀에게 돌리며 말을 꺼냈다.





 "무엇이 흔들립니까?" 




 그녀와 눈이 두 번째 마주쳤다.

심장이 툭 떨어져 구르는 것 같았다.



 Aspasia는 찻잔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우리가 믿는 모든 것." 





 그녀의 눈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숨을 내쉬며 고개를 기울였다.


페리클레스는 왠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기울여야 할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3층은 중간이에요. 

 아래도 아니고, 위도 아니에요.


 이 카페의 3층은 독특해요.

인테리어의 질감과 색감 충돌부터,

의자와 테이블의 높낮이 비율까지.


여기선 모든 게 흔들려요.

 생각도, 감정도,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요."






 "...그럼 저도 지금

 흔들리고 있을까요...?"





 아스파시아는

눈빛을 확 풀며 웃었다.




 "당신이 말해줘요.

지금, 흔들리고 있어요?"




INTO THE 6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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