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 6 2장 last
나는 아직 집이 없으니까 (last)
[페리클레스의 방 – 10분 후]
페리클레스는 답글 알림을 본다.
심호흡한다.
알림을 클릭한다.
이메일: aspasia.flows@gmail.com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이메일을 줬어."
페리클레스는 노트북을 연다.
Gmail.
새 메일 작성.
수신: aspasia.flows@gmail.com
그는 커서를 제목란에 올린다.
타이핑.
제목: 안녕하세요
삭제.
제목: 댓글 보고 연락드립니다
삭제.
제목: 대화 제안 감사합니다
...
페리클레스는
10분간 제목만 고민한다.
"...왜 이렇게 어렵지?"
그는 결국 쓴다.
[페리클레스의 이메일]
제목: Re: 창작 과정에 대한 대화
Aspasia님,
댓글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의 영상과 댓글들이
저를 많이 흔들었습니다.
좋은 의미로든, 불편한 의미로든.
하지만 제 영상에 관심을 가져 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창작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질문 주세요.
페리클레스 드림
작성 완료.
페리클레스는
마우스를 발송 버튼 위에 올린다.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썼는지
다시 확인한다.
"내가 왜 이렇게 썼지?"
삭제하려다 멈춘다.
"...아니야."
그는 심호흡한다.
우레는 한 번 울리면 하늘을 가른다.
클릭.
[메일 발송됨]
"...보냈다."
페리클레스는
노트북을 닫는다.
그리고 방바닥에 눕는다.
"나 지금 뭐 한 거야..."
[아스파시아의 작업실 – 2분 후]
띵-
새 메일 알림.
아스파시아는 이메일을 연다.
제목을 본다.
Re: 창작 과정에 대한 대화
아스파시아는
이메일을 2번 읽는다.
한 번.
Aspasia님,
댓글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의 영상과 댓글들이
저를 많이 흔들었습니다.
좋은 의미로든, 불편한 의미로든.
진심을 고백하며 자신의 긴장을 해소했다.
긴장을 품고 있기 힘든 거다.
이 사람은 지금 명민하지 못한 상태다.
불편한 의미로든, 단지 이 구절 하나.
자신의 감정을 이 정도 소극적으로
표현할 힘밖에 남지 않은 거다.
두 번.
하지만 제 영상에 관심을 가져 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창작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질문 주세요.
페리클레스 드림
아무 말도 아닌 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그가 중요하게 여긴 진심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언어.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표현.
지킬 힘 없고, 지키려는 시도.
그는 지금 방전됐다.
아스파시아는 생각한다.
"방전된 사람은 거절하지 못해."
그녀는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제안하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수락할 거야."
타이핑.
이번 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촌의 '정원' 카페 어떠세요?
"거절하려면
복잡하게 설명해야 하고,
수락하면 한 줄이면 돼."
발송.
"그는 쉬운 쪽을 택할 거야."
만나면, 진심을 채워 주며 포지션을 바꾸고,
거절하면, 심리적 부채를 지운다.
무엇이든 나쁘지 않다.
흐름은 내가 탔다.
[Aspasia의 답장]
제목: Re: Re: 창작 과정에 대한 대화
페리클레스님,
좋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촌의 '정원' 카페 어떠세요?
조용하고, 대화하기 좋은 곳입니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
저도 기대됩니다.
Aspasia --- 발송.
아스파시아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 앞에 선다.
밖에는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그녀는 창문에 손을 댄다.
"그가 오고 있어."
바람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페리클레스의 방 – 5분 후]
띵-
새 메일 알림.
페리클레스는 벌떡 일어난다.
이메일을 연다.
페리클레스님,
좋습니다.
"좋다고?"
페리클레스는 다음 줄을 읽는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촌의 '정원' 카페 어떠세요?
"...어?"
페리클레스는 멈춘다.
"만나자고?"
그는 자기 이메일을 다시 확인한다.
제 창작 과정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질문 주세요.
"나는 질문하라고 했는데..."
그는 아스파시아의 답장을 다시 본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3시,
서촌의 '정원' 카페 어떠세요?
페리클레스는 의자에 앉는다.
손가락이 떨린다.
"이메일로 답하면 되는 건데..."
그는 생각한다.
"왜 직접 만나야 하지?"
다시 이메일을 읽는다.
조용하고, 대화하기 좋은 곳입니다.
"대화..."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
저도 기대됩니다.
"기대한다고..."
페리클레스는
노트북 앞에서 멈춘다.
"답해야 하나?"
그는 생각한다.
시나리오 A: 수락
직접 만남
얼굴 마주 봄
...뭐 말하지?
시나리오 B: 거절
"이메일로 답하겠습니다"
안전함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멈춘다.
"하지만 뭐?"
그는 창밖을 본다.
비가 그쳤다.
"나 지금 뭐가 무서운 거지?"
페리클레스는 자문한다.
"만나는 게 무서워?
아니면..."
그는 거울을 본다.
"그녀를 보는 게 무서워?"
페리클레스는
움츠러들어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자신의 1/10 구독자도 안되는
채널 운영자한테.
나보다...
생각이 잠시 멈췄다.
나보다.....
내가...
....
확인해 보아야겠다.
페리클레스는
노트북을 다시 연다.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타이핑.
좋습니다.
토요일 3시에 뵙겠습니다.
멈춘다.
"...너무 쉽게 수락하는 건가?"
삭제.
타이핑.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메일로도 충분히...
멈춘다.
"...아니야."
삭제.
페리클레스는
5분간 타이핑과 삭제를 반복한다.
좋습니다.
감사하지만...
토요일 3시...
혹시 시간을 다른...
모두 삭제.
결국 그는 쓴다.
[페리클레스의 답장]
제목: Re: Re: Re: 창작 과정에 대한 대화
Aspasia님,
토요일 3시, 좋습니다.
서촌 '정원'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페리클레스
작성 완료.
페리클레스는
발송 버튼을 본다.
"...보내면 확정이야."
그는 심호흡한다.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클릭.
[메일 발송됨]
페리클레스는
노트북을 닫는다.
그리고 거울을 본다.
"...3일."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냥 대화하는 거잖아."
페리클레스는 캘린더를 연다.
토요일.
토요일 오후 3시
장소: 서촌 '정원' 카페
저장 완료.
[아스파시아]
그녀는 옷장을 연다.
옷을 하나씩 꺼내본다.
"첫인상은 중요해."
11월
차콜 터틀넥.
그레이 핸드메이드 코트.
"차분하고, 지적이고,
위협적이지 않게."
그녀는 옷을 들고
거울을 힐끗 본다.
아..역시 아울렛 가야겠네.
바람은 부드럽게 다가온다.
[페리클레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만날 때 할
질문 리스트를 작성한다.
질문 리스트:
1. 당신은 왜 '운용'이라는 단어를 쓰나요?
2. 당신이 생각하는 영향력이란?
3. 당신은...
아니 이건 너무 직접적이야.
삭제.
3. 왜 저에게 관심을 가지시나요?
타이핑.
삭제.
타이핑.
삭제.
"...그냥 자연스럽게 대화하자."
그는 피로한 표정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눈을 지그시 눌러 비빈다.
눈 안쪽에서
뿌연 빛이 조각나며
어둠 속으로 흩뿌려졌다.
어둠 속으로
작은 생각이 빼꼼 올라왔다가
빛과 같이 부서져 흩어졌다.
...예쁠까?
우뢰는,
생각보다 먼저 울린다.
토요일.
서촌 '정원' 카페.
오후 3시.
INTO THE 6TH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