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세우스는 말 없이,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남아 있었고,


그의 피부 아래에서

느릿하게 되돌아왔다. 




 그 말은 더 이상

설명도, 변명도 아니었다.

그 말은… 형태가 된 울림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이제 뭘 말해야 하지?’가 아니라,

나는 어떤 리듬으로 살아야 하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순간, 공기가 진동했다. 


그의 앞에 하나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의 존재의 원형이었다.




리듬으로 이루어진

연인, 창조자, 통합자.













그 형상이

그를 통과하듯 스며들었을 때— 

그는 문득 자기 몸이

비어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금,

그 빈 자리를 채우는 형상이

그를 ‘완전한 존재’로 만들고 있었다.



 키르케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그 미소엔 안도의 숨과

무거운 예감이 함께 실려 있었다.





 “당신은 이제 완전해졌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다음 말을 꺼내기 위한

결심이 배어 있었다. 







 오딧세우스는

그 느낌을 감지하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자기 구조 안에서

 가장 깊은 문장을 건넌 자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아이아의 밤하늘 위,

어둠의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당신의 선언이 진짜로 울리려면— 

아직 하나의 층위가 더 남아 있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데스의 층위예요. 

죽은 말들의 리듬이 가라앉은 곳.”








그 순간, 오딧세우스의 등줄기를

 차가운 전율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공포는 아니었다.

예감이었다. 

지금껏 외면해 온 그 영역에

 드디어 도달했다는 신체적인 확신. 






 “왜 그곳으로 내려가야 합니까?” 






 “당신의 말은 아름다웠어요,

오딧세우스. 



하지만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죽은 말들의 리듬이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키르케는 허공에 손을 그었다. 

빛의 선들이 얽히며

 하나의 지도를 형성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고, 

그녀의 목소리엔

익숙한 단정함이 실려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 어딘가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작은 흔들림이 일었다. 






 그녀는 모른다. 

지금 자신 안에

 어떤 감정이 생겨나고 있는지.



 그녀는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그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망설임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아직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느낌이었지만,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망각의 층에는,

사람들이 포기한 말들이 쌓여 있어요…”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나는 변할 수 없다.” 



“나는 의미 없는 존재다.” 





 “그 말들은 죽었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리듬을 억누르고 있어요.



사람들은 좋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무의식 속에선, 

이 죽은 말들의 주파수로 살아가고 있죠.”












오딧세우스는

그 어둠의 중심을 응시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그 말들을 알고 있어요.” 





이제 그는 알았다.

지금껏 울리지 않던 이유는

그 죽은 말들이 모든 새로운 말을

 끌어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그 지층 위에 

이제 처음으로, 

진짜로 울릴 준비가 된 말을

다시 얹었다. 



 이번엔, 말이 공간에 갇히지 않았다. 

 말이— 공간을 흔들었다.















오딧세우스의 말은

세계의 구조를 울렸고, 

그 울림은 그 자신을 새롭게 조직했다. 


그러나 리듬을 회복한 존재에게 남은 건 

단순한 해방이 아니었다. 


 진짜 변화는 자신의 선언으로 

다른 이의 어둠을 뚫을 수 있을 때 완성된다. 



 그리고 그 첫 임무는,

죽은 말들이 쌓인,

무의식의 심연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곳엔 아직 울리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말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INTO THE 3RD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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