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형체 하나가 걸어나왔다.
죽은 말들처럼 흐릿하지도,
산 자들처럼 또렷하지도 않은—
마치, 말의 맥락 사이에서
떠도는 문장 같았다.
눈을 감은 채,
그는 단 한 마디 없이
오딧세우스의 안으로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나는 테이레시아스.
이곳에 오래 머문 자, 말을 듣는 자,
그리고 말의 궤도를 읽는 자다.”
그 순간 오딧세우스는 직감했다.
이 존재는 그 어떤 망령보다도
깊은 층위에서 말하고 있다.
“이들이 반복하는 말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네… 중력이지.
말의 궤도라는 중력.”
그 말에, 오딧세우스는
마치 오래된 진실을 되찾은 것처럼
숨을 멈췄다.
“나는 그 궤적을 읽을 수 있을 뿐,
설계하거나 해체할 순 없어.
그건… 너의 일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지웠다.
순식간에,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오딧세우스의 과거가
얼굴을 하고 걸어나왔다.
파트로클로스.
빛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우주의 폭풍에 삼켜졌던 친구.
"오디… 넌 아직도
우리를 구하려 하네.”
오딧세우스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는 그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너를 보냈어.”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몸에서 하나의 고리가 끊어졌다.
“아냐… 내가 갔지.
하지만… 여길 떠난 후,
나는 매번 같은 말만 해.”
“나는 쓸모없었고,
나는 선장을 실망시켰고,
나는… 그냥 실패였다.”
그 말들은 공기처럼 흘렀고,
그 말에 묶인 존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티타늄 성운.
로토파구스.
수없이 잃었던 대원들.
말에 묶인 영혼들.
그들의 눈빛은 무표정했지만,
반복되는 고통의 진폭으로 떨리고 있었다.
“우린 여기서 못 나가, 오디.
이 말들이 우릴 묶고 있어.”
그때였다.
오딧세우스가 말을 선택했다.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슬픔도, 설득도 아닌—
울림이었다.
“너희들의 말은 죽은 게 아니야.
그냥 잘못된 문장에 고정되어 있었을 뿐.”
그는 수정의 진동을 키웠다.
파트로클로스에게 말했다.
“넌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었어.
넌 호기심과 용기를 가진 탐험가였어.
신호에 다가간 건
너의 본성 때문이었지.
실패가 아니었어.”
그 말에— 파트로클로스의 눈이,
처음으로 반응했다.
빛이
작지만 확실하게
되돌아왔다.
그리고 오딧세우스는
대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모두
어떤 ‘발견’을 위해 여기 왔어.
명령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리듬 때문에.”
“그건 죽은 게 아니야.
지금도 살아 있어.”
말은 구조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 말의 리듬이 공기를 바꾸고,
대원들의 표정을 조금씩 되살렸다.
“하지만…
어떻게 이 말들을 바꾸지?”
그 물음에— 새로운 진동이 도착했다.
그의 말은 울렸다.
그러나 이제, 울림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말을 바꾸는 것과,
말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걸.
그가 선언한 순간
세계는 잠깐 멈췄고,
다음 구조를 기다리는우주처럼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고요 속으로— 빛이 내려왔다.
INTO THE 3RD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