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 바퀴가 자갈을 구르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렸다. 

클레오파트라는 얇은 천으로 몸을 감싼 채,

창문도 없는 화물 마차 뒤편에 웅크리고 있었다.


 궁의 향수 냄새는 이미 사라지고,

이제는 나일강의 축축한 강비린내만이 그녀의 코를 스쳤다. 


 한 시간 전만 해도 그녀는

이복형제,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앞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 다음 날이었다. 

왕관은 아직 그 누구의 머리 위에도 올려지지 않았건만,

권력은 이미 이양이 끝난 상태였다.





"너는 이제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열다섯 살 소년의 목소리였지만, 

그 뒤에는 포티노스와 아킬라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섭정들이 결정한 것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직 열여섯에 불과했고, 

여자였으며, 

무엇보다 위험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았고,

백성들이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까. 




 "죽이지는 않겠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는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추방령이었다.












마차가 멈췄다.

마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내리십시오.

더 이상은 갈 수 없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내려다본 곳은

나일강 하류의 폐허였다. 


한때 이시스 신전이었을 것 같은 석조 건물들이

달빛 아래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둥 몇 개가 아직 서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강물 소리만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차는 그녀를 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클레오파트라는 차가운 모래 위에 서서 

자신의 처지를 정리해보려 했다. 


궁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얇은 튜닉과

작은 가죽 주머니 하나뿐. 


주머니 안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반지와

금화 몇 개가 들어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열여섯의 그녀는

아직 완전히 여자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이런 곳에 내던져지기에는 아직 어렸다. 


소녀의 앳됨과 여인의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고, 

그 때문에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몸을 감싸는 얇은 튜닉이 바람에 휘감겨

그녀의 가는 허리가 드러났고, 

달빛 아래서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는

진주처럼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흔들리는 큰 눈동자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고, 

방황하는 눈동자를 붙잡으려 꽉 깨문 입술에서

붉게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불안한 표정 속에서도

그녀의 눈 안에는, 

꺾이지 않는 무언가가 빛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굴복하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움이 

그녀의 눈 속에서 반짝였다. 





 달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사방은 고요했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너진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깨진 기둥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가다가, 

아직 온전한 벽면을 발견했다.

그곳에 등을 기대고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물소리가 들려왔다.












클레오파트라가 고개를 돌리니,

신전 뒤편에서, 강물에서

 누군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스며들며

그 모습을 비추었다. 


 젊은 남자였다. 

 그는 물에서 막 나온 듯 온몸이 젖어 있었고,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젖은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허리는 놀랄 만큼 가늘었다.

그는 천천히 물에서 나오며 머리를 뒤로 넘겼고, 

그 순간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며 달빛에 반짝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숨을 멈췄다. 

 그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은 궁에서 본 어떤 조각상이나 

벽화와도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살아있고, 움직이며,

해독할 수 없는 위험한 아름다움. 



마치 강물의 신이

인간의 모습을 빌려 세상에 나온 것 같았다.








 그 순간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녀가 만난 모든 남자들,

궁의 귀족들, 외교관들,

심지어 이복형제들까지도,

모두 그녀가 '클레오파트라'라는 것을

먼저 알고 접근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그는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강가에서 자신의 옷을 집어 들었다. 

간단한 튜닉이었지만,

그것을 입는 동작조차 우아했다. 


젖은 몸에 천이 달라붙으며

그의 근육의 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리고 그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시선은그녀를 정확히 붙잡았다.

그 시선에 담긴 것은

놀람도, 호감도 흥미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그녀가 거기 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도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엔 무언가…

 이미 건너가 버린 것이 있었다.


 달빛은 더 흐려졌고,

 바람은 둘의 침묵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지?"



 그 순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물소리보다 느리게, 

하지만 심장을 정확히 찌르는 속도로 다가왔다. 


 



1장 Part 2. 애쉬 (예정)

INTO THE 4TH 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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