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를 떠나던 날
출항 직전,
시스템 점검 중.
“선장님,
절차를 확인해주십시오.”
에우릴로쿠스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미세한 흔들림이 있었다.
“모든 시스템 정상.
예정대로 출발한다.”
“정말…
이대로 떠나시겠습니까?”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오딧세우스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질문은,
남겨진 사람들 대신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
“나는 떠난다.
왜냐하면 그 세계 안에선
더 이상 나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식적으로 답했지만,
그의 무의식은 조금 다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남겨진 자들에 대한 죄책감,
끝내 발견하지 못한 답답함,
울리지 않는 세계에서 느끼는
정신적인 기아 상태로부터의 도피.
이 감정들이 새어 나오자,
그의 내면에서 작은 균열이 생겼다.
“나는 도망쳤다.”
그 말이 속삭이듯 떠올랐다.
그리고 미궁이 반응했다.
벽이 떨렸고,
그 떨림이 미궁의 구조를 변형시켰다.
“통과하세요.”
키르케의 목소리는
리듬을 잇는 도구처럼 울렸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내쉬는 숨과 함께, 내뱉었다.
"나는 지구를 떠났다.
그들을 남겨두고.
그것은 도피였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길이 열렸다.
진입을 허락받은 자만이 열 수 있는,
그 문이.
2. 티타늄 성운의 기억
두 번째 길목은 더 좁았다.
그는 몸을 비틀어 간신히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기억을 만났다.
티타늄 성운에서 잃어버린 대원들.
우주의 미지 영역을 탐사하던 중,
오딧세우스의 결정으로
세 명의 대원이 작은 탐사선을 타고
이상 신호를 조사하러 떠났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성운의 방사선 폭풍이 그들을 삼켰다.
그는 명령하지 않았지만
결정은 그의 몫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냈다.”
오딧세우스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내 결정이..."
미로의 벽은 이번에는 붉게 물들었다.
분노와 자책이 가득했다.
"모든 책임을
짊어지시는군요."
키르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선택은 없었나요?"
오딧세우스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그들을
명령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원했다.
위험을 알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죽음에 책임이..."
그는 말을 멈췄다.
이 발언이 구조가 되어
지금 이 감정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문장을 바꿨다.
“나는 책임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는다.
나의 미래는 다를 것이다.
미래를 다르게 만들어 가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
붉은 벽이 사라지고,
길은 투명해졌다.
3. 그들을 ‘버리고’ 왔다는 감각
세 번째 길목에서,
미로는 갑자기 넓어졌다.
천장도 높아졌다.
넓어진 회랑 안에는 안개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점점 드러나는 형체들.
그는 멈췄다.
안개가 감싸고 있는 것,
그것은 그가 감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얼굴들이었다.
가족과 스승의 얼굴.
부모님이 '준-현실 붕괴' 사건으로 사라진 후,
오딧세우스는 그들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결국 발견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우주 탐사를 위해
아카데미를 떠날 때,
그를 키워준 멘토들이 그를 말렸다.
"너는 여기 머물러야 한다.
네 부모님의 연구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오딧세우스는 떠났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가 떠났던 건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등졌다고 믿어야만'
자신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등졌다.”
순간 헤일 교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딧세우스,
넌 항상 너 자신의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게 네 운명이고, 네 길이었어.”
오딧세우스는 깊이 생각했다.
그는 지구를 떠났고,
스승님과 같이 연구하던 동기들,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다른 이들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그것은 등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진정한 탐색을 위한
필연적인 여정이었다.
“나는 그들을 등진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길을 걸었고,
그들도… 그들의 세계를 남겼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문이 열렸다.
그 문은 안개 뒤에 있는 심연이었고,
그 심연은 다음 구조를 호출하고 있었다.
벽이 열린다.
그러나 그 문 너머는 이전과 다르다.
이제 당신이 마주할 것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아니라,
말이 되기 전,
감각조차 되지 못한
'당신'이라는 구조의 기원이다.
그동안 당신은
'왜 그랬을까'를 묻고
'그때 그 감정'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질문이 바뀐다.
“나는 왜 그런 말만 반복하게 되었는가?”
“내가 만든 말은,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
당신은 지금,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온
구조적 선언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말들은
언어 이전의 감정과 감각에서,
생존과 수치심,
타인과 연결 혹은 거절되는 순간의
감각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당신은 그 말들을
‘당연한 말'로 생각하며
그동안 되뇌어왔다.
지금 이 미궁은,
당신이 가진 모든 말의 설계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INTO THE 3RD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