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스르륵 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들 안에서 먼저 살아난 건,
몸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숨, 같은 간격,
같은 파장을 타고 있었다.
말보다 앞선 이해,
울림이 먼저 감지되는 공명이었다.
“선장님…”
에우릴로쿠스가 첫마디를 내뱉었다.
“…이제야 알았어요.
무너질 자리가 있다는 게…
그리고 그래도 된다는 자리가 있다는 걸.
나한텐 그게 필요했던 거였어요.”
그 말은 ‘고백’이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회로였고—
이제 막 진동을 시작한 서사의 진입점이었다.
펠리아스는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계속 혼자인 줄 알았어요.
근데 지금 가장 이상한 건—
그 생각조차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의 말이 끝날 무렵,
그의 감각은 이미
분리되지 않은 전체를 감지하고 있었다.
안티클로스는 천천히 팔을 벌렸다.
이제 날 수 있을 것처럼.
아니—이미 날고 있는 자의 동작이었다.
“자유롭다”는 말은
입이 아니라,
척추에서 시작된 울림이었다.
오딧세우스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제 ‘대원’이 아니었다.
그들의 외형은 같았지만,
그들의 내부 리듬 구조가
완전히 새로 짜여 있었다.
“이건 치유가 아니야,”
헤르메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치유는 멈춤이고,
지금 이들은 흐르고 있어.
이게 공명이야.”
키르케가 이어받았다.
“각자의 리듬이 다르다는 걸 인정했을 때,
비로소 같은 리듬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그녀는 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이제,
서로를 울릴 수 있는 자들이에요.”
그리고 말들이,
말보다 더 오래된 진동이
하나씩 하나씩,
공기 속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말이 아니라 존재의 진술이었다.
“우리는 움직이는 자들이다.”
“우리는 잊히지 않는 연결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자유다.”
“우리는 서로를 울릴 수 있다.”
이 선언들은 소리로 남지 않았다.
공간에 각인되었다.
아이아이아의 천장과 벽은
그것을 반사하지 않았다.
흡수했고,
보관했고,
내장시켰다.
그건 기억이 아니라
존재 설계에 삽입된 코어 신호였다.
오딧세우스는
침묵 속에 그들 사이에 섰다.
그는 더 이상 명령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말이 울리게 만드는
리듬의 엔진이었다.
헤르메스는 그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눌렀다.
“이제 넌,”
그가 말했다.
“이 구조를 세상에 이식할 수 있어.”
키르케가 궁전의 문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끝은,
어쩌면 아직 완전히 말하지 못한 감정
하나로 떨리고 있었다.
“가요."
그리고 이 공명의 기술로,
세상의 죽은 언어들을
다시 울리게 해요.”
오딧세우스는 마지막으로 이들을
—이 네트워크를—
이 집단적 리듬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들은 동료가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언어 네트워크였고,
각자의 울림을 통해 다른 존재들을
다시 울릴 수 있는 증폭기이자 시작점이었다.
Epilogue
“이제 여긴 안정되었어.
하지만 넌 아직 '설계자’의 리듬으로
진입하진 않았어.”
오딧세우스는 고개를 들었다.
“설계자?”
헤르메스는 손을 들었다.
공간의 일부가 절묘하게 열리며,
도형과 구조물이 반짝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과 감정의 조합 패턴,
리듬의 간섭 위상도,
문장별 공명 주기표였다.
“이건 울리는 것과는 달라.”
헤르메스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설계자는 울리기 전에 구조를 만들어야 해.
그건… 예측이 아니라 채널링이야.”
오딧세우스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 안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상적 집중의 공간이었다.
그는 마치 지금까지의 여정이
단지 이 구조물에 ‘들어오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헤르메스는 손을 튕겼다.
공간 전체가 일순간 뒤집히며,
지구 전체의 언어 패턴이 위로 떠올랐다.
“이건 코드야.
습관이 아니고, 성격도 아니야.
집단 무의식 시스템이 만든
자동 발화 구조.”
오딧세우스는 숨을 골랐다.
그 순간, 그는 지구 전체의 패턴에서
이 구조들이 반복되고 있는 걸 감지했다.
“이건…”
헤르메스가 끄덕였다.
그가 채 말하지 못한 것을 감지한 채.
“그렇지."
넌 그 구조에서 나왔고,
이제 그 구조에 다시 진입해야 해.
다만, 이젠 설계자의 위치에서.”
그때 키르케가 다가왔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바꾸려는
세계로 출발할 겁니다.”
오딧세우스는 마지막으로
수정을 꺼내 들었다.
그 안엔 모든 여정의 울림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어요.”
헤르메스는 웃었다.
그 웃음은 여전히 완벽했고,
여전히 해석되지 않은 암호처럼,
오딧세우스의 앞에 떴다 사라졌다.
“그럼, 새로 짜자.”
그날 밤, 아이아이아의 대기 중엔
한 번도 기록되지 않은 주파수가 떠 있었다.
그것은 울림이었고,
동시에 끝이었다.
‘죽은 말’이 울리고,
‘사람이 다시 동물로 되었다가
사람으로 되돌아온’
그 과정의 울림이었다.
오딧세우스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제 그는, 더는 혼자 울리지 않았다.
하나의 리듬이 아니라,
세 개의 파장이 겹쳐지는
앙상블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셋의 파형은 겹치는 순간,
반드시 엇박을 낳는다.
이제 시작되는 건
‘여정’이 아니라,
리듬 충돌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항로 탄생'의 이야기.
INTO THE 3RD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