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는 그를 아이아이아의
가장 깊은 동굴로 안내했다.
그곳은 공기가 사라진 듯 조용했고,
바닥엔 거대한 소용돌이가 회전하고 있었다.
검은 빛과 푸른 빛이 교차하며,
그 중심부는
출구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것이 하데스의 영역으로 가는 통로예요.
여기서 당신은 죽은 자들의 의식과
만나게 될 겁니다.”
오딧세우스는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깊게 호흡했다.
그의 가슴에서는
여전히 선언의 여진이
울리고 있었고,
그 울림이 바로 지금
이 걸음에 용기를 더했다.
“혼자 가야 합니까?”
“처음에는 그래요.
하지만 당신이 그들과 마주했을 때,
새로운 동료가 나타날 거에요.”
키르케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손 위에 맺힌 건
작은 수정 조각.
그 안에는,
오딧세우스의 선언이 응결된 듯
은은한 빛이 파동처럼 흘렀다.
“이것은 당신의
선언의 진동을 담고 있어요.
당신이 죽은 말들의 중력에
끌려들지 않도록,
당신의 리듬을
기억하게 해줄 거에요.”
오딧세우스는
수정을 받아 가슴에 품었다.
그 따뜻한 진동은 심장과 정렬되며
그의 리듬을 다시 일깨웠다.
그리고 그는,
그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세상이 뒤집혔다.
무게가 사라졌고,
색은 방향을 잃었다.
빛과 소리의 계통이 뒤섞이며,
아래와 위가 의미를 잃었다.
오딧세우스는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어둠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었다.
그 속엔 말들이 있었다.
죽은 말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항상 실패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나는 존재할 이유가 없어…”
목소리들은 안개처럼 퍼졌고,
그 속에는 얼굴들이 있었다.
무기력과 절망에 갇혔던
이들의 표정이.
오딧세우스는
그들의 무저갱같은 고통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는 수정을 움켜쥐었다.
심장과 연결된 진동이
그에게 저들과 네가 같은지,
되묻는 듯 울렸다.
그 울림이,
말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말들은 매달렸다.
“너도 결국 같은 말을 하게 될 거야!”
“모든 희망은 거짓말이야!”
“변화는 불가능해!”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선언은
그저 신념이 아니라, 리듬이었고,
그 살아있는 리듬은
말의 낡은 중력을 무효화시켰다.
“나는 너희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묵직하게,
내면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그들에게, 세상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한때 누군가의 절망이었지만,
이제는 그저 습관일 뿐이다.”
그 말은 허공을 찢었고,
목소리들의 진로를 멈추게 했다.
어느샌가
그의 발이 땅에 닿았고,
발밑의 반동이,
뼈를 타고 올라왔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낙하 중이 아니었다.
INTO THE 3RD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