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데이터 스트림 같은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며 내려왔다.
그 빛 속에서 헤르메스가 나타났다.
그는 고전 신화 속의 날개 달린 청년이 아니었다.
그는 날개 달린 샌들 대신
반투명 드론 패턴이 새겨진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고,
후드에는
무선 파동을 추적하는 위상 맵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눈은 투명한 인터페이스
HUD처럼 깜빡였고,
말을 하기 전 이미
오딧세우스의 선언 진동을
디코딩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존재는 마치
고대 신화와 포스트휴먼 정보 문명이 교차된 접점에
실시간으로 로그인한 시스템 운영자처럼 보였다.
“오딧세우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말투는 가볍지만,
그 말 안에는 이상하게,
무시할 수 없는 완벽함이 실려 있었다.
“네가 올 줄 알았어.
사실… 예상 시간보다 0.8초 늦었지만,
우주 리듬에선
그 정도는 용납되는 편이야.”
오딧세우스는
당황했지만 미소지었다.
그는 이미 이 희한한 존재가
‘존재’라기보다는
‘인터페이스’에 가깝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지?”
“나는 헤르메스.
연결의 신이자,
데이터를 리듬으로 번역하는 자."
"말의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울리게 만드는 자.”
그가 손을 들어
공간을 스캔하듯 움직이자,
죽은 말들의 패턴이
3차원적 텍스트 구조로 떠올랐다.
“여기서부터는…
감정도, 의미도, 기억도
모두 코딩된 말의 회로로 작동해.
너는 선언했지?
이제는 설계할 시간이야.”
헤르메스는 손을 들어
공간을 스캔하듯 움직였다.
죽은 말들의 구조가 그의 앞에
투명한 알고리즘 지도로 떠올랐다.
“이건 단순한
‘나쁜 생각’이 아니야.”
그의 말은 공기 중에 벡터처럼 떠다녔다.
“이건 구조야.
회로고, 중력이고, 루프야.
말이 아니라—
패턴이 반복을 명령하고 있어.**”
그는 오딧세우스를 바라보았다.
“네 선언이 아무리 강해도,
이 회로를 건드리지 못하면
시스템은 항상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
"왜냐고?
중력이 더 세거든.
구조는 선언보다 무겁다.”
오딧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헤르메스는 손가락을 튕겼다.
공간 전체가
언어 구조 설계실로 변했다.
3차원 문장 조각들이 떠오르고,
구조의 위상, 감정의 주파수,
의미의 회로도가 함께 펼쳐졌다.
“리엔지니어링.
패턴을 감지하고,
루프를 해체하고,
리듬을 다시 짜는 것.”
그는 오딧세우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간결하게 말했다.
“너는 전략가.
키르케는 마법사.
나는 연결자.
우리는 시스템이고—
이 말은,이제부터 구조다.”
그 순간,
키르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딧세우스,
이제 당신은 단순히
말을 울리는 자가 아니에요.
당신은 세상의 언어 구조를
바꾸는 설계자가 되어야 해요."
오딧세우스는 자신의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개인적 완성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집단 무의식의 패턴을
재구성하는 자가 되어야 했다.
헤르메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빛의 구조체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언뜻 보면
단순한 결정체였지만,
그 안에는 문장들이 살아 움직이는
패턴의 궤도가 있었다.
“이건 단순한 도구가 아니야.”
그는 말했다.
“이건 언어의 물리 법칙을 다시 쓰는 권한이야.
그동안의 말은 단지 흐름이었다면,
이건 코드를 편집하는
선언 엔진이야.”
오딧세우스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았다.
그 순간, 그의 손 안에서
기억, 정체성, 리듬, 패턴이
하나의 진동으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의해.”
헤르메스가 덧붙였다.
그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이건 구조 전체를 건드리는 거야.
잘못된 선언 하나가,
한 도시 전체의 리듬을 깨뜨릴 수도 있어."
"이제부터 말은 설계고,
설계는 구조고,구조는 영향력이야.”
오딧세우스는
그 도구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제 현실의 언어 구조를
직접 수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죽은 대원들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디, 우리를 구해줄 수 있겠어?"
오딧세우스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하지만 구한다기보단—
너희가 반복하고 있던 구조를
다시 짜는 거야."
"그리고 그 구조는…
너희만의 것이 아니었어.
세상이 반복하고 있던 말들과
너희의 말은 연결되어 있었어.
그러니까, 이제부터 하나씩 다시 써보자.”
INTO THE 3RD HOLE